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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좋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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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좋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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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퇴원한 할머니께서 새벽 4시에 돌아가셨다는데 사망진단서 써드려도 되나요?" 화요일 아침 출근하자 받은 전화다. 내과의로서 노인 환자가 많다 보니 임종까지 지켜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104세 할머니, 집에서 임종을 맞기 위해 퇴원하셨다. 힘은 없어도 초롱초롱한 눈매로 미소를 지으며 의료진의 볼을 쓰다듬으려 팔을 뻗으시던 다정한 분이다. 12월의 한겨울 날, 집안에서 미끄러져 고관절 골절로 수술 받은 것이 6개월 전이다. 수술은 잘 끝났으나 집에서 요양 중 압박부위 욕창과 폐렴, 패혈증, 그리고 위궤양 출혈 등 합병증으로 입원 치료를 하던 중 경과가 악화됐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아늑한 집에서, 완벽하지는 않아도 '좋은 죽음'을 맞이하시도록 집으로 보내 드렸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미국인은 '통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이어 '영적인 평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꼽는다. 영국인은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일본인은 '심신의 편안함' '희망하는 임종 장소'에 이어 흥미롭게도 '의료진과의 좋은 관계'를 중시했다. 우리나라는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과 '가족이 함께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의 임종 장소는 76.2%가 병원이며 집은 14.4%에 불과하다. 반면 원하는 임종 장소는 가정이 57.2%, 호스피스 19.5%이고, 병원은 16.3%로 가족과 함께하는 편안한 임종을 원하기는 하지만 병원 내 임종 비율이 높고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2008년도 영국에서 제시한 '생애말기돌봄전략' 중 '좋은 죽음'의 4가지 조건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하고 친근한 환경에서 ▲존경과 존엄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가까운 가족, 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지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죽음' 대비 반대 의미를 가진 죽음, '힘든(?) 죽음' 혹은 '존엄하지 않은 죽음'을 꼽으라 한다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중환자실에서 기도 삽관을 포함해 각종 치료용 관을 주렁주렁 달고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수많은 기계음에 둘러싸여 가족과 친구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 채로 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당수의 가족들은 그 치료가 환자를 위해 최신 의학에 의거한 최선의 치료라고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좋은 죽음의 4가지 요소와 상반되지 않은지 고민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2017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중단할 수 있게 됐다. 우리 104세 할머니는 기도 삽관은 물론이고 급식관도 거부하셨다. 댁에 가셔서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과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아차, 들고 있는 전화기로 다시 눈길이 간다. "아, 네, 사망 예측하고 퇴원 후 12시간 만에 돌아가셨으니 사망진단서 우리 병원에서 발급하셔도 됩니다."


백현욱 분당제생병원 임상영양내과 바이오메디컬연구센터 소장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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