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설명하는 사례로 '출근길 교통행렬' 사례는 참 적절하다. 출근길 시내 간선도로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각각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한다. 운전자들은 묘기에 가까운 실력을 발휘한다. 충돌 1, 2초 전에 멈추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옆 차선으로 파고든다. 운전자끼리 출발 전에 어떤 약속도 없었다. 교통신호, 도로사정, 다른 운전자의 행동을 예상해 그때그때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 가면서 운전에 집중할 뿐이다. 운전자가 주의할 것은 교통법규뿐이다. 그 법규 안에서 1초를 먼저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도 종합상황실에서 보면 질서정연한 흐름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교통법규와 신호는 운전자를 특정 장소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든 안전하고 확실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최대한 가능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다른 운전자의 안전까지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제생활에도 각종의 법규와 신호가 존재한다. 이는 규제로 나타난다. 규제는 국민의 생활을 직접 제약하므로, 각 국민이 타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한에 그쳐야만 한다. 정부가 갖는 규제권을 과도하게 행사해, 이를테면 신호등 설치에 그치지 않고, 자동차마다 차로를 지정하거나 '국민의 삶을 책임져 준다'면서 아예 운전까지 대행해 주겠다고 나설 때는 문제가 생긴다.
케네디는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미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시오"라고 했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 대통령은 2018년 9월 6일 이른바 '포용국가'라는 새 구호를 내걸고, "이제 국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국민들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인도 아닌 국가가 국민에게 무언가 해 줄 것을 요구하거나, 가부장도 아닌 국가가 국민의 생애를 책임진다고 약속하는 것 자체가 국가 본연의 역할을 넘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마땅하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자유인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1990년에 발간한 책 '선택할 자유'에서 진정한 자유인이라면 나라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도 않을뿐더러,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도 않는다고 단언했다. 자유인은 정부라는 조직을 통해 자유 수호와 사회 정의의 실현, 그리고 개인의 책무를 어떻게 감당해 나갈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신호등이 고장 났다. 정치인의 잘못된 신념이 신호등을 고장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4년 전보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비숙련 실업자는 크게 늘어났다. 청년이 자력으로 서울에 집을 가질 수는 없게 됐다. 열심히 일하는 게 의미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얼치기 경제학자와 정치인이 합심해 신호등을 고장냈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든 재산권을 부정하고 시장원리를 거스르면 결코 번영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 하에 알아서 운전하게 하면 된다. 국가가 차로를 지정하고 심지어는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려고 애쓰면 쓸수록 목적지로 가는 길은 더 늦어진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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