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상 조선대 일본어과 교수 '문화로 맛보는 맛있는 일본 요리'
일본 규슈의 아소산을 여행하다 낯선 음식을 만났다. ‘도리사시’라는 닭고기 사시미다. 요리사가 생닭을 얇게 썰어 고추냉이와 함께 내준다. 가고시마현의 향토음식이라며…. 신선해 보였으나 도통 손이 가지 않았다. 오이타현의 이자카야에서 만난 ‘바사시’도 그랬다. 말고기 사시미다. 식중독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바사시’의 유래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을 침략한 구마모토 성주 가토 기요마사가 군대의 식량이 바닥나자 군마를 날것으로 먹은 데서 비롯됐다. 전쟁이 끝나고 구마모토로 돌아온 뒤에도 말고기를 날로 즐겨 먹으면서 하나의 문화가 됐다.
사시미가 일본 전역에 널리 보급된 건 에도 시대 중기. 지금과 달리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아니었다. 당시 무사나 거상은 날생선을 거의 먹지 않았다. 유통, 냉장,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
일본에서는 사시미를 구이, 조림, 튀김, 찜과 함께 하나의 조리법으로 인정한다. 칼로 고기 살을 베는 과정이 중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의상 조선대 일본어과 교수가 쓴 ‘문화로 맛보는 맛있는 일본 요리’는 원목을 사용해 만든 가구에 비유한다. 목재의 특성을 이해하고 톱질해야 가치가 올라가듯 고기도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선도가 높은 생선살을 감칠맛을 가둔 채 날카로운 사시미 칼로 살이 뭉개지지 않게 자르는 것이 핵심이다."
사시미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기원전 800년경 서주 시대 문헌에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북방 정벌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들에게 잘게 썬 무를 구름처럼 흩뿌려 놓고 그 위에 얇게 자른 잉어 요리를 내줬단다. 춘추전국 시대부터는 이런 생고기나 날생선을 파나 겨자채를 곁들여 초에 찍어 먹었다.
일본에서도 생선을 날로 먹는 식습관이 기원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사시미 형태로 먹었다는 기록은 가마쿠라 시대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어부들의 즉석요리였는데 생선 살을 잘게 썰어 그대로 먹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와서야 와사비초·생강초 등의 조미초를 곁들여 먹거나 매실장아찌·와사비초·겨자초·생강초·된장·이리자케 등으로 무쳐 먹었다. 일본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먹는 날생선을 ‘회(膾)’라 쓰고 ‘나마스’라고 읽었다.
오늘날의 사시미 형태로 발전한 건 간장이 탄생한 무로마치 시대 후기다. 조미하지 않고 와사비간장에 찍어 먹었다. 일본에서 ‘회’와 ‘사시미’라는 용어가 구분된 건 이때부터다. ‘문화로 맛보는 맛있는 일본 요리’는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가마쿠라 시대까지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생고기나 날생선을 회로 표현했으나 무로마치 시대에 회, 즉 나마스가 식초를 사용한 회무침이라는 다른 요리로 변하고,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생선회를 와사비간장에 찍어 먹게 되면서 회를 대신해 생고기나 날생선을 나타내는 말로 ‘사시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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