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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글로벌 스타트업에 80년대 재벌 기준 규제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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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발표의 최대 관심사는 온라인 플랫폼 쿠팡의 동일인 지정 여부다.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을 지정할지 아니면 회사를 지정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기업집단이 되면 순환출자, 일감몰아주기, 지주회사 등 규제 대상이 된다. 여기에다 정부 재벌규제의 핵심 대상인 재벌 총수로 이름을 올리면 집중 감시가 더해진다. 동일인은 배우자나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과의 거래를 모두 공시해야 한다.


공정위는 김 의장이 미국인인 관계로 총수를 따로 정하지 않고 쿠팡을 기업집단으로 지정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이달 초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를 따져 묻자 공정위가 움찔해 논의를 다시 했다고 한다.

사실 외국인에 동일인 제도를 적용하느냐 여부는 지엽적인 논의에 불과하다. 1986년에 도입된 동일인 제도가 쓸모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재벌의 폐해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사법처리도 많이 되던 시절에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벌규제를 도입해 효과가 있었다면 제대로 법을 만들어야 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낡은 규제로 4차산업의 날개를 꺾고 있다”고 지적했듯이 IT기업, 플랫폼 기업의 등장에 맞춰 규제의 본질이 달라져야 한다.


쿠팡의 김 의장 같은 젊은 스타트업 설립자를 전통적인 재벌총수와 동일선상으로 봐야 할까. 상식적으로 그래선 안된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요즘 젊은 창업자들은 과거의 재벌들처럼 친족들을 동원해 가족경영을 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이 높아지기도 했고, 투자자들이나 금융 감독 기관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경영자의 전횡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돼있다. 또 창업자 본인의 입장에서도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경영권 세습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 김 의장의 의결권은 주당 29배에 달하는 클래스 B주식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주식은 상속 혹은 증여시 주당 1의결권으로 환원된다. 즉 상속, 증여, 매각 등으로는 경영권 세습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는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경우 쿠팡Inc의 지배하에 있는 쿠팡 USA와 쿠팡 Asia까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돼 공정위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쿠팡의 해외 법인간의 거래, 투자 및 일반 거래 내역까지 조사 받을 수 있어 글로벌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아마존과 알리바바 등은 동남아 시장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투자와 인수합병이 자유롭지만 쿠팡의 경우 앞으로 이런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제제를 가할 경우 이에 따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공정위는 지금까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정유회사인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이다.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공정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을 동일인으로 지정해 국내 재벌총수처럼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그래서 에쓰오일에 대해 법인을 동일인으로 정해 규제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상법에는 없고 여러 법에 들어가 있는 동일인 용어의 정의와 동일인 지정의 법적 근거 등 모든 것을 재검토해야 한다. 재벌의 상속이 이어지면서 지분율도 희석돼 규제의 목표와 대상도 달라져야 한다. “재벌 혼내준다”던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도 개선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말뿐이었다.


지금 공정위도 문제점을 다 안다. 현행 제도를 즐기면서 안 고치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 산업조직이나 글로벌스탠더드에 대한 감각 부족으로 못 고치는 것인가. 공정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시장경제 안에서 기업간 건전한 경쟁을 보호하고 촉진하는 것이다. 쿠팡과 같은 신세대 기업들을 과거 재벌들처럼 취급하기보다는, 이들이 시장 경쟁을 좀 더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공정위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홍권희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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