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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다시 국제적 심판대에 선 한국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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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다시 국제적 심판대에 선 한국 인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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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전 외교부 차관보·북핵대사


30여년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즈음까지, 워싱턴의 미국 의회는 한국 정부에 큰 골칫거리였다. 그곳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문제가 연일 비판되고 성토되는 자리였다. 몇 달이 멀다하고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가 청문회의 도마에 올랐고, 한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상하원의원들의 연명서한이 시도 때도 없이 보내져왔다.

40여년 전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던 한국 정부의 초대형 대의회 불법로비 사건인 ‘박동선 사건’도 그런 맥락에서 벌어졌다. 필자가 그 시대 외교부 북미국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 할당받은 임무도 이른바 ‘반한(反韓) 인사’로 분류되었던 껄끄러운 미국 상하원의원들의 이력과 활동을 모니터링 하는 일이었다.


그 당시 한국 인권문제에 관심이 각별했던 사람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톰 랜토스 하원의원, 에드워드 피언 하원의원, 토머스 포글리에타 하원의원 등 민주당 진보파 의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권위주의 정권의 공적(公敵)이었다. 그들이 한국 민주화와 인권을 문제 삼을 때마다 한국 정부가 내세운 방어논리는 남북 대치 상황과 국내문제 불간섭 원칙이었다.


1987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이래 한국 인권문제는 미국 의회에서 사라졌고,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나라로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 등의 인권문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랜토스 하원의원이 2008년 작고하자, 미 의회는 그의 공적을 기려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를 의회 내에 설립하고 세계의 주요 인권문제들을 논의해 왔다.

그런데 바로 그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지난 4월15일 한국 국회의 ‘대북전단금지법’ 제정을 문제 삼아 ‘한반도인권 청문회’를 개최함으로써, 한국 인권문제는 30여년 만에 의회 청문회장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대미 로비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외교부는 응당 청문회 개최를 막으려 백방으로 애썼겠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의회는 북한 주민에게 외부세계 정보를 공급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는 ‘대북전단금지법’이 한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고, 동시에 외부세계 정보의 대북한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도 침해한다고 비난하는 입장이다. 이에 앞서 미 국무부도 3월 말 공개된 국별 인권보고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을 표현의 자유의 중대한 제약이라 비판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치 상황과 국내문제 불간섭을 명분으로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청문회 개최에 반대했는데, 이는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들이 주장했던 논리와 다를 게 없었다. 미 의회의 한국 인권문제가 이른바 민주화운동권과 인권운동가들이 세운 정권에서 재현되었다는 점은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이유 여하간에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고 역사의 심각한 퇴행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인권법 시행을 4년째 미루고 있고, 작년 11월 동해에서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강제 북송했으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도 계속 불참 중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일관된 거부 자세는 한국이 과연 세계의 문명국들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선진국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야기한다.


정부의 온갖 강변에도 불구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의 체제 유지를 돕기 위한 ‘북한체제보위법’이라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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