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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생명 살린 '지포', 라이터의 대명사 되다 [히든業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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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인 사랑 받는 라이터 브랜드
지난해 기준 6억개 판매…오일 라이터 대명사
2차 세계대전·베트남전·한국전 등 군인들 애용품
내구성·신뢰성 부각…큰 인기 비결

1930년대부터 생산된 '지포 라이터'는 현재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사진=지포 홈페이지 캡처

1930년대부터 생산된 '지포 라이터'는 현재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사진=지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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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특유의 금속 케이스, 부싯돌의 원리를 이용해 불을 점화하는 '지포 라이터'는 이미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기름을 연료로 삼는 오일 라이터의 대명사로 '지포'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다. 지난 20세기 초, 미국의 한 작은 라이터 공장에서 시작한 지포는 어떻게 라이터 업계를 평정했을까.


유럽 라이터에 영감 받아 '지포' 발명

지포의 창업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 발명가인 조지 블레이스델이다. 1895년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작은 마을인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난 블레이스델은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블레이스델의 아버지는 그를 사관학교로 보냈지만, 학교 특유의 엄격한 군대 문화에 염증을 느낀 블레이스델은 이른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블레이스델이 라이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32년 한 오스트리아 사업가와 만나면서부터다. 이 사업가는 유럽에서 인기를 끌던 뚜껑 달린 달린 라이터를 들고 다녔는데, 이에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된 블레이스델은 자신만의 라이터를 설계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블레이스델은 라이터의 케이스와 뚜껑을 경첩으로 연결해 여닫을 수 있는 새로운 설계를 완성해냈고, "지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평소 "지퍼(zipper)"라는 단어의 발음을 좋아했던 그가 신제품에 걸맞게 변용한 신조어였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목숨 구하기도…신뢰의 상징


브래드포드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한 지포는 발매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포를 글로벌 라이터 제조업체로 발돋움시켜 준 계기는 바로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유럽 등을 휩쓸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다.


당시 지포는 유럽 전장에서 싸우는 미 육군 보병들을 위해 특별한 라이터를 개발했다. 전쟁 물자로 징발되면서 희귀해진 황동 대신 일반 금속으로 케이스를 만들고, 여기에 검은 페인트를 칠해 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한 라이터였다. 이 군용 지포 라이터는 특유의 내구성과 신뢰성으로 군인들의 체온을 보호했다. 또 지포 라이터가 북미 대륙을 넘어 유럽 등으로 퍼져나가는 데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 미군 병사가 소지했던 지포 라이터 케이스.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다. 지금까지 지옥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 미군 병사가 소지했던 지포 라이터 케이스.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다. 지금까지 지옥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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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지포 라이터는 군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55년부터 벌어진 베트남 전쟁 당시 지포 라이터 덕분에 목숨을 구한 한 병사의 일화는 지포를 세계적 라이터 제조업체의 반열로 이끌어 줬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안드레즈 중사는 적군의 총격을 맞고 쓰러졌지만, 가슴의 주머니에 넣어둔 지포 라이터가 총알을 대신 맞아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총알을 맞은 지포가 아무 이상 없이 작동됐다는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지포 라이터가 총알을 대신 맞아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안드레즈 중사의 일화를 그린 지포 홍보 영상. / 사진=지포 유튜브 캡처

베트남전 당시 지포 라이터가 총알을 대신 맞아준 덕분에 목숨을 구한 안드레즈 중사의 일화를 그린 지포 홍보 영상. / 사진=지포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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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는 지포 라이터의 견고함과 신뢰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이 됐고, 지포의 인기를 크게 끌어올려 주었다. 지포 또한 안드레즈 중사의 이야기를 공식 홈페이지에 상세히 소개할 정도로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안드레즈 중사의 이야기를 짧은 홍보 영상물로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6·25 전쟁 당시에도 미군은 어김없이 지포 라이터를 들고 한반도에 상륙했다. 당시 병사들이 케이스에 새겨둔 낙서, 문구 등은 21세기인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90여년 이른 성공 역사…지난해 사상 최초 6억번째 제품 생산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온 뚜껑 달린 라이터에 착안해 고안된 지포는 20세기 내내 군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됐다. 전장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별다른 이상 없이 작동해 준 덕분에, 소비자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포는 지난해 6월 사상 최초로 6억개가 넘는 라이터 제품을 생산했다. 지난 2012년 5억번째 라이터를 생산한 뒤 불과 약 8년 만에 1억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한 것이다.


지포는 90여년에 이르는 장대한 역사에 걸쳐 성공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혁신'과 '신뢰성'을 강조한다.


지포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 "6억번째 라이터 생산은 수십 년에 걸친 선구적인 혁신의 역사를 보여준다"라며 "지포는 미국 산업 혁명의 첨병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제한 품질 보증은 우리 기업의 상징"이라며 "앞으로도 모든 소비자들에게 '지포는 언제나 작동하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료로 고쳐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약속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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