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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韓, 복지국가 함정 경계해야"(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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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경제자문기구 '국민경제자문회의'
이근 부의장, 2021년 1월 취임 후 인터뷰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1일 서울 종로구 국민경제자문회의 집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1일 서울 종로구 국민경제자문회의 집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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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아시아경제 최일권 경제부장, 정리=김은별 기자]


대통령 직속 경제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자문회의) 이근 부의장이 한국 경제에 대해 "복지국가 함정에 가까이 있다"고 평가했다. 고도성장 후 정체를 빚는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한국이 개도국이 아닌 ‘선진도상국’ 지위에서도 성장률 정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현금성 복지보다는 사회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으로 돈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부의장의 발언은 4·7 보궐선거 이전에 나왔지만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주목받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북유럽식 복지모델을 한국에 활용하고자 했지만, 실제 복지는 현금성 복지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현금성 복지를 위한 지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남은 임기동안 경제정책을 선회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이 부의장은 지난 1일 아시아경제신문과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유럽은 현금성 복지를 하다가 ‘복지국가병’에 걸린 것을 깨닫고 사회서비스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밝혔다. 1년 남짓 남은 현 정부가 우선할 과제로는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의제화하고, 어떤 형태의 복지를 할 것인지 개념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취임한 이 부의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대표적인 신(新)슘페터학파로 분류되는 이 부의장은 혁신성장은 물론 복지에서도 현금성 지원 보다는 일자리 창출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금을 쥐어주는 게 아니라 결국 출산·육아·교육 등 각종 사회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한 일자리가 복지의 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일자리를 늘려야 생산성이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안전망을 현금이 아니라 육아, 보육 등 사회서비스로 제공해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文 남은 임기동안 성장·복지 조화 공론화 필요
현금성 복지보다 사회서비스 확충에 돈 써야
효율적인 돈 쓰기 고민할 때


그는 오는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나올 경제 관련 의제도 공개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G7 의장국인 영국의 초청을 받은 상태다. 이 부의장은 정상회의 의제를 준비하는 각국 패널의 한국 대표로 다음 달 전문가회의에 참석한다. 그는 "미·중의 자의적 입김이나 조치에서 자유로운, 규칙을 기반으로 한 투명한 국제경제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이번 G7의 핵심 의제"라고 밝혔다. 미·중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규칙을 만들고 외교·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의도다. 이 부의장은 "G7이 다자적 자유무역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남짓 남은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는 ▲성장과 복지 선순환의 의제·공론화 ▲과도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견제 ▲리쇼어링과 효율적인 글로벌밸류체인(GVC) 정립 ▲장·단기 산업혁신 등을 꼽았다.


다음은 이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韓, 중진국 탈출했지만 복지국가 함정에 가까이 있어"

-국제슘페터학회(ISS)를 2년간 이끄셨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조지프 슘페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의 쌍벽이다. 케인스는 수요를 높이기 위한 단기 거시재정정책을 주로 말했다면 슘페터는 ‘공급 측 기술혁신’에 따라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장기 경제성장을 중요시했다. 장기적 해법은 혁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슘페터학파는 혁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일자리를 만들어 효율적인 근로복지(Workfare)를 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유럽도 초기엔 케인스식 복지국가 쪽으로 갔으나 복지국가병, 선진도상국의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닫고 슘페터리안 쪽으로 바뀌었다.


-현금보다는 사회서비스를 만드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한국은 과거 개발국가에서 이제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지향하고 있지만 복지국가 함정, 소위 ‘선진도상국 함정’에 빠질 우려가 크다.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의 70%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한국의 노동력 부족 문제는 여성의 고용참가율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아이를 ‘키워주는’ 시스템을 제공해야 여성들이 일할 수 있다. 유럽도 국가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여성의 고용참여율이 올라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0%로 스웨덴(81.1%), 스위스(80.2%), 뉴질랜드(76.8%), 네덜란드(76.7%), 덴마크(76.0%) 등과 20%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게 이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북유럽을 따라가자고 했지만 잘 안되는 모습이다.

△현금성 복지에 치우쳐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다. 현금성 복지는 돈은 썼는데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근로의욕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공공일자리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사회서비스 쪽으로 간다는 청사진을 갖고 추진 방향을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1일 서울 종로구 국민경제자문회의 집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1일 서울 종로구 국민경제자문회의 집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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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은 미·중에 휘둘리지 않는 규칙기반의 세계질서 지향"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도 문제다,

△대외적으로 ‘G2(미국·중국)’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새우등이 터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6월 G7 회의에서 11개 국가(G7+한국·호주·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가 ‘경제 복원력’에 대한 제안 보고서를 낼 것이다. 정상회의 전 마지막 전문가 패널 회의가 다음 달에 있는데, 한국 대표로 참석한다.


-11개 국가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GVC’를 논의하는 것인가.

△그렇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해외생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도 자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미·중 간 헤게모니 싸움까지 벌어지며 강대국의 자의적 입김이나 조치에 각국이 휘둘리게 됐다. G7 외에 영국이 초청한 4개 나라를 보면 모두 미·중 다툼에서 경제적 피해를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경제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낼 예정이다. 강대국의 자의적 조치에서 자유로운, 규칙에 기반한 투명한 국제규율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 의제다. G7의 4개 영역(헬스·기후변화·민주주의·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중에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 선언하고 외교·경제정책 해야
EU '민주주의·인권·자유무역' 가치, 한국과 잘 맞아
G7 핵심의제 '투명한 국제경제'…고래 싸움서 새우등 터지지 않을 정책마련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미·중 사이에서 오히려 어정쩡한 입장이 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정경분리, 경중안미(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를 해왔는데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 사태 이후 분리가 어려워졌다. 이번 기회에 한국뿐 아니라 비슷한 입장에 처한 나라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 경제와 정치 이슈를 분리하자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번 선언이 잘 되면 한국의 부담도 한결 덜어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복원력이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GVC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의 파트너는 유럽연합(EU)이다. 한국이 신남방에 신북방정책, 추가로 신서방정책을 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을 ‘형님’으로 인정하고 따라가던 EU가 최근엔 ‘민주주의·인권·자유무역’이라는 가치를 세우고 독자적 노선을 선언했다. 한국과 가장 잘 맞는 가치다.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선언하고 그 가치에 기반해 외교·경제정책을 해야 고래 싸움에서 새우등이 터지지 않을 것이다.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정책이다. 청와대·외교부와도 가치를 공유했다.


"혁신성장 2.0 논의…韓자본주의, 영미식 대신 북유럽식으로 가야"

-부의장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당부한 점은.

△혁신성장 2.0에 대해 논의했다. 과거엔 정부가 기술을 개발해 민간에 공급했지만 요즘은 민간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혁신정책을 공공조달을 포함한 ‘수요 지향적 산업정책’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술 수준이 높지만 초기 수요가 부족한 기업의 혁신적 제품을 정부가 사주는 식이다. 혁신성장 1.0이 ‘제조업 르네상스(제조업 중심, 스마트팩토리 확대)’였다면, 코로나19를 겪으며 디지털플랫폼 쪽 중요도가 더 커졌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됐던 ‘디지털 사회 1.0’ 당시엔 초고속 인터넷망이 큰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그것만으론 안 되는 시대이고 교육·헬스·노동시장 등 디지털화가 필요하다.


-자문회의에서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은.

△취임 후 전체 회의에서 ‘한국자본주의가 영미식 대신, 북유럽식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한국자본주의는 1980년대 중반에 혁신 주도의 추격형 자본주의로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했고, 외환위기 이후엔 혼합자본주의(동아시아+영미식)로 성장했지만 최근엔 성장률, 고용률, 분배 모두 악화되면서 영미식 자본주의를 닮아가고 있다. 최악의 경우 기업투자는 저조하고 외국인 중심 주주자본주의만 득세할 수 있다. 금융자산 소유가 양극화하며 분배는 더 악화하고 국내 산업과 고용효과는 줄어들 수 있다. 그냥 두면 ‘나쁜 자본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


-북유럽 자본주의를 벤치마크할 수단은

△벤처기업 상장시 차등의결권을 주고, 보유기간에 비례해 주주 의결권을 주는 것이다. 창업자 중심, 보유기간에 비례해 의결권을 주면 단기 투자보단 장기적 기업가치를 높이는 자본에 효과적인 의결권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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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부의장은…디지털 뉴딜 밑거름 제시한 '미래학 교사'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미래학 교사로 통한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혁신, 디지털 등 거시적 혜안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시절인 2019년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발간한 ‘디지털사회 2.0’ 서적은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는 책 제목인 ‘디지털사회2.0’이라는 용어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부의장은 인터뷰에서 "이 책이 현 정부의 정책기조인 디지털 뉴딜에 밑거름을 제시했다"며 자부심을 표했다.

이 부의장은 디지털 사회가 결국 모든 분야로 확산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디지털 사회 1.0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핵심 인프라였고 2.0은 디지털 인프라의 확산 단계"라며 "디지털 시스템을 통한 원격교육과 의료 등을 진작에 실시했다면 코로나19에 덜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 단계도 있냐’는 질문에 이 부의장은 "향후 한국 경제의 발전전략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면서 "성장과 복지의 조화, 한국 기업의 재성장전략, 환경변화 내용을 올 연말까지 담아 차기 정부가 필요할 만한 아이디어로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학계에선 이 부의장의 정치적 성향이 중도적인 만큼 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됐을 때 놀랐다는 평가가 적잖았다. 현 정부 임기는 1년 정도 남았지만 장기적인 시각으로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잡기 위해 그를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자문회의는 대통령에게 경제정책을 조언하는 헌법기구로, 대통령이 직접 의장을 맡는다. 이 부의장은 자문회의의 실질 책임자다.

그는 "한국은 기존 제조 대기업과 네이버·카카오 등 신흥 디지털플랫폼의 공존이 강점이고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가 개편되며 기회도 얻게 될 것"이라고 봤다.

다만 "첨단기술은 미국과 일본에, 시장은 중국에 의존하는 건 약점"이라고 평가했다. 또 "정부정책이 중소기업을 어렵게 해 오히려 대기업 주도성장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 자산시장 쏠림현상, K자형 회복은 약점과 위협요소"라고 덧붙였다. 그가 언급한 정부정책은 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을 가리킨다.






대담=최일권 경제부장 igchoi@asiae.co.kr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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