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넘어 트렌드로 자리잡은 '채식'
서울 학교, 한 달 두번 '채식 급식 먹는 날' 지정
전문가 "친환경적인 소비 공감하는 사람 늘어"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 직장인 박 모(29) 씨는 최근 '간헐적 채식'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2번 '채식 먹는 날'을 정해 육류가 없는 식단으로 요리를 한다. 박 씨는 "채식을 하면서 소화가 잘 안 되던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며 "적당한 채식을 통해서 환경을 조금 더 생각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박 씨는 특히 요리한 음식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조리법을 공유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박 씨처럼 간헐적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 위기가 찾아온 현재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친환경적 소비를 지향하는 경향은 취향을 넘어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모든 식사를 채식으로 하는 것이 아닌 육류 소비와 채식을 병행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ble+vegetarian)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채식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현실적인 제약과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육류도 유연하게 소비하는 것이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약 10년 전인 2008년(15만명)보다 무려 10배 증가한 수치다.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2006년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육식'을 지목했는데, 이에 따르면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8%를 배출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양인 13.5%보다도 높은 비중이다. 즉 육류 소비를 줄이고 채식을 늘릴수록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동물해방물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와 환경을 위해 비건 채식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이 같은 사회 흐름의 영향으로 최근 국내 채식 관련 시장도 더욱 커지고 있다.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늘어났고, 프랜차이즈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까지 채식 샌드위치, 채식 햄버거 등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플렉시테리언이라고 밝힌 20대 직장인 최 모 씨는 "비대면 활동이 늘어 자연스럽게 배달 음식도 많이 먹게 됐는데,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건강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생활 습관을 바꿔보자는 계기로 간헐적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며 "굳이 엄격하게 무리해서 채식하는 것보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식단 조절을 하는 것이 더 오래 채식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지자체에서도 채식을 위한 각종 제도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1월 서울 시내 948곳의 채식 식당을 발굴해 온라인에 공개하고, 지난 5일에는 전국 의회 최초로 '채식의 날' 지정했다. 또 채식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서울시가 힘써야 한다는 취지의 '채식 조례'를 통과시켰다.
학교 등 공교육기관에서도 채식 식단을 권고하는 곳이 늘고 있다. 8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 모든 학교는 이번 달부터 한 달에 두 차례 '채식 급식'을 시행한다.
이는 지나친 육식 위주의 식습관이 기후 위기를 부른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육류 섭취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에 따라 서울 내 학교에서는 이번 달부터 월 2회 '그린급식의 날'을 운영하고, 일부 학교에는 '그린바(bar)'를 설치해 채식 선택제를 시범 운영하게 된다.
서울시뿐 아니라 인천, 충북, 경남, 울산 등 다수의 교육청은 간헐적 채식을 이미 시행 중이거나 채식 급식을 실시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전문가는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소비 지향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면서 채식 문화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대표 대표는 "과거엔 채식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최근엔 자신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채식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증가한 영향, 또 기후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 과정에서 채식이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들, 특히 육식을 빼놓고는 해결할 수 없다"며 "한 명의 비건보다는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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