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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근대까지 철학·과학은 샴쌍둥이…과학을 가능케한 건 공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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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 인형'

[빵굽는 타자기] 근대까지 철학·과학은 샴쌍둥이…과학을 가능케한 건 공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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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말엽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과학은 샴쌍둥이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의 당대 학문적 업적은 물리학·역학·생물학 등 오늘날 과학으로 취급되는 분야까지 아우른다. 근대의 시작을 알린 르네 데카르트(1596~1650)도 철학자이자 수학자·물리학자였다. 17세기에 고전역학이 확립되는 등 과학혁명을 거친 뒤 과학은 철학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됐다.


홀로 떨어져 나온 과학의 발전 속도는 비약적이었다. 도덕·윤리 같은 문제는 철학에 맡겨둔 채 세상이 어떻게 구성됐고 세상이 인간에게 어떻게 유용될 수 있을지에 몰두했다. 드론·로봇·인공지능(AI) 등은 과학 발전이 가져온 최신 결과물이다. 그러나 눈부신 과학 발전의 이면에 인간 존엄성 상실과 환경 파괴라는 각종 부작용이 생긴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유튜브나 TV 프로그램에는 과학의 과오를 반성하고 철학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식의 강의가 많다. 그동안 과학이 소홀히 한 규범적 차원의 반성과 더불어 철학에서 창의성을 발견해 속도가 느려진 과학 엔진이 다시 빠르게 돌 수 있도록 동력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한때 이공계 취업시장을 강타한 인문서적 열풍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철학을 과학의 도구로 보는 인식이 내재한 것이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던 과학이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집 나간 과학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동안 과학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많은 것이 사실 아주 오래전 철학에서 먼저 사유됐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인형’은 이를 날카롭게 증명한다.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에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에 이르기까지 근대 철학자들의 저술 9권으로 이들의 사상이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재조명한다.

AI 로봇은 과연 인류가 언제 처음 생각했을까. 많은 사람이 아무리 일러야 컴퓨터가 개발된 20세기쯤이지 않을까 추측할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750년께 쓰인 호메로스(BC 800?~BC 750?)의 ‘일리아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줬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 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다. 불사신들의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과학은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따위는 철저히 거부한다. 과학은 항상 측정 가능한 실험을 통해 사실로 증명된 것만 믿는다. 그러나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인형’은 과학에서 배제돼온 것들이 오히려 과학 발전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라고 꼬집는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과학을 가능케 하는 것은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적 지식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예언"이라며 "역설적이게도 과학은 예언적이고 공상적인 인간의 마음 위에 실리고서만 드넓은 대양 위에 떠 있는 함선처럼 항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현대물리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스코틀랜드의 철학자·경제학자·역사가 데이비드 흄(1711~1776)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밝히는 대목은 흥미롭다. 아인슈타인(1879~1955)이 흄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의 시·공간의 개념을 상대성이론에 담을 때 흄의 경험론적 인식론에 기초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작 뉴턴(1642~1727)이나 아인슈타인의 인과적 세계관을 뒤집고 현대 주류 물리이론이 된 양자역학의 '우연적 세계관'은 흄이 죽은 뒤 1779년 출간된 저서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사상적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전한다. 흄은 이 저서에서 신에 관한 논의를 철학·과학 등으로부터 배제해야 한다고 논증했다. 이는 필연성과 확실성을 해당 학문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확률'과 '우연'에 기초한 양자역학을 비롯해 진화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철학의 욕조를 떠도는 과학의 오리인형/서동욱 등 10人 지음/사이언스북스/1만8500원)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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