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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우리도 사람입니다" 코로나 걸린 노숙인에 차별·혐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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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쪽방·종사자 98명 코로나 확진
"제발 좀 사라져라" 일부 시민들 노숙인 향한 혐오 발언 이어져
노숙인들 '음성 결과서' 보이며 "관리 잘하고 있다" 울분
중수본 "노숙인 진료시설 확대…급식 지원도 차질 없이 추진"

3일 오후 서울역 광장 한 계단에 노숙인이 기대어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3일 오후 서울역 광장 한 계단에 노숙인이 기대어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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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김소영·김초영·이주미 인턴기자] "무슨 벌레 보듯 쳐다보니까…우리도 사람입니다."


최근 노숙인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노숙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잘 씻지 않고 마스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방역수칙을 무시해 결국 코로나19에 걸려, 사회 안전망을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일부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책임이 모두 노숙인에 있는 등 거친 비판도 나오면서 사실상 '노숙인 혐오'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 국면 상황에서 이 같은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성 소수자에 관한 혐오와 차별적 표현들이 급속하게 확산했다. 특히 'OO수면방' 등 성 소수자 집단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은 일반화로 굳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일 오후 서울역 광장 한쪽에 한 노숙인이 천과 비닐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3일 오후 서울역 광장 한쪽에 한 노숙인이 천과 비닐로 추위를 버티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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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노숙인들 정말 너무 싫다. 코로나 달고 사는 거 아니냐"


3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들을 향해 거친 비판을 하고 또 일부는 '다 같은 사람이다, 손가락질은 아닌 것 같다' 등 반응을 보였다.

4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일단 노숙인들에게 마스크를 좀 넉넉하게 지급했으면 좋겠다"라면서 "검사도 좋지만, 예방이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들에 대한 시선에 대해서는 "글쎄, 별다른 생각은 없다. 우리도 그들도 다 같은 사람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노숙인들은 사실상 거주지를 특정할 수 없어 불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50대 여성 이 모씨는 "서울역을 많이 다니는데, 아무래도 (노숙인들을) 지나치면서 조금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금 불안하고 두렵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노숙인이 코로나19에 걸려 더 불안하고 확산이 더 빠르게 될 것 같다는 비판적 의견도 있었다. 한 70대 남성은 "아주 많이 불안하다"라면서 "그들은 어디 있을 곳도 없지 않나, 저렇게밖에 많이 나와 있으니 더 불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숙인들은 코로나19에 걸려도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혐오성 발언도 이어졌다. 한 여성은 "노숙인들은 솔직히 이판사판 인생 아니냐"라면서 "아마 걸려도 본인은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우리만 피해 본다"라고 지적했다.


한 노숙인이 코로나19 음성 판정 결과서를 취재진에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노숙인은 수 차례 코로나 검사를 받아 시민들이 우려하는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한 노숙인이 코로나19 음성 판정 결과서를 취재진에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노숙인은 수 차례 코로나 검사를 받아 시민들이 우려하는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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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별진료소 들어오고 사람들 몰려…그 전에 코로나 한 명도 안 걸렸다"


노숙인들은 그야말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서울역 광장 한 계단에서 만난 노숙 생활을 20년째 하고 있다고 밝힌 노숙인 김 모(53)씨는 취재진에 당장 자신이 받은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 확인서'부터 꺼내 보였다.


이 노숙인은 대부분 노숙자가 자신과 같이 다 음성 판정이며 일부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인데, 모든 노숙인을 '더럽다' , '노숙인이라서 더 위험하다' 라고 몰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여기서 코로나 걸렸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떠들고 욕하고 있는데 이거는 좀 잘못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기 서울역 광장은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곳 아닌가, 왜 우리를 몰아내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디 대합실도 못들어간다. 우리를 보면 코로나라고 하면서 그냥 쫓아낸다"라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에 지나가는 한 70대 남성은 "무슨 노숙자들하고 대화를 하느냐, 코로나 걸린다"라면서 "노숙자들 때문에 아주 못살겠다. 그냥 어디 다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해 한동안 소란스러운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역에 선별진료소가 들어서면서 코로나19 확인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 몰리는 등 인파가 몰려 노숙인들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숙인 최 모(61)씨는 "서울역에서 진짜 노숙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안 걸렸었어. 한 명도 안 나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오더라고. 그게 왜 나오냐. 집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 계속 왔다 갔다 계속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안 걸렸었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진짜 노숙하는 사람들은 코로나 검사를 최소 5번씩 다 받았다. 진료소가 생기기 전까지 확진자가 전혀 없었어. 그런데 진료소 생기고 확진자가 나왔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이 만든 '코로나 응원 게시판'.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노숙인들이 만든 '코로나 응원 게시판'.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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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혐오 심각


코로나19에 걸린 노숙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차별적 시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 성소수자, 종교를 둘러싼 차별, 혐오가 더 공고해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사회적 낙인과 회복방안'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새로운 사회적 집단에 사회적 낙인이 생겨났다기보다 한국사회의 소수자 차별이 전염성 질환을 매개로 가시화하고 심화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공익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박한희 상근 변호사는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해 감염병 관련 권리의 주체를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확장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대책 수립이 명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염병예방법(제49조의2)이 규정한 감염 취약계층을 '사회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 노인 등'으로 한정하지 말고 장애인, 빈곤에 처한 사람, 이주민, 취약 노동자 등 다양한 집단을 포괄해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변호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차별의 양상은 대부분 기존의 차별적 구조가 재난 앞에 더욱 드러난 것들이라 사회 전반의 차별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들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노숙인들에 대한 코로나19 관련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시 인권정책 자문기구인 인권위원회 위원들은 긴급대책을 촉구했다.


서울시 인권위 위원들은 2일 긴급성명을 통해 "지난해 서울시는 코로나19 대유행까지 확산한 상황에서 거리 노숙인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주거 예산을 추가 편성하지 않았고 이는 올해 또한 마찬가지"라며 "특히 '응급잠자리' 제공정책은 십여 명 많게는 70명이 함께 수면 공간을 공유하며 화장실을 비롯한 위생공간을 공유하게끔 해 노숙인들을 코로나19 감염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에 현저하게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인권위 위원장인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코로나19가 최근 노숙인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숙인들은 코로나19 우려로 머무를 곳 없이 떠돌며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무료 급식 등 지원품을 받으려 줄지어 서 있다. 노숙인들은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며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무료 급식 등 지원품을 받으려 줄지어 서 있다. 노숙인들은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며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했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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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시는 노숙인 대상 코로나19 관련 조처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3일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온라인 브리핑에서 "노숙인 특성상 검사 이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지체될 경우 다시 찾기 힘든 부분이 있어 보다 빨리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하는 것을 서울시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국장은 "전수검사를 하고 난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주 1회 정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기적인 전수검사 결과에 따라 확진자는 더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방역당국도 노숙인들에 대한 코로나19 예방을 더욱 긴밀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거리노숙인 등 총 9500여명에 대해 선제검사를 마치고, 검사 이후 소재 파악이 어려운 노숙인에 대해서는 신속항원검사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항원검사란 스스로 콧물 등을 채취해 진단키트에 넣어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30여 분 내에 알 수 있는 진단 검사 방식이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방역을 강화하면서도 노숙인에 대한 필수서비스는 중단 없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하고, 급식 등 필수서비스 지원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중수본은 노숙인 생활시설에 대해 방역책임자 지정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생활시설의 임시 대기공간 마련 등 노숙인 시설별 특성에 따른 강화된 방역지침을 마련해 배포할 예정이다.


전날(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노숙인·쪽방·종사자 7602명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 결과 98명이 양성으로 확인(2일 오후 9시 기준)됐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소영 인턴기자 sozero815@asiae.co.kr
김초영 인턴기자 choyoung@asiae.co.kr
이주미 인턴기자 zoom_01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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