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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라면이 사회의 거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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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한종수 '라면의 재발견'

[이종길의 가을귀]라면이 사회의 거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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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서민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먹거리다. 그래서 시·소설 등 문학 작품에 단골로 등장한다. 이외수의 '훈장'이 대표적인 예다.


"배가 고프군. 나는 방구석에 놓여 있는 두꺼운 마분지 상자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상자에 인쇄돼 있는 '삼양·쇠고기·주의 햇빛과 습기를 피해주십시오' 따위의 글자부터 무심코 읽은 다음 그 속에서 문명인의 대용 식사 봉지를 끄집어냈다. 비닐 포장지에는 친절하게도 조리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고, 계란과 파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이 난다는 조언까지 첨부돼 있었다."

이외수는 젊은 시절 '춘천 거지'로 불렸다. 라면 하나도 네 등분해 먹을 만큼 가난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육상 3관왕에 오른 임춘애는 "라면을 먹고 운동했다"는 소감으로 헝그리 정신의 표본이 됐다. 뒤늦게 코치의 부인이 간식으로 끓여준 것으로 밝혀졌으나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가난했든 아니든 라면으로 배고픔을 해결했던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현·한종수가 쓴 '라면의 재발견'은 라면과 사회의 관계를 다룬 인문학적 고찰서다. 한국사회의 변곡점마다 라면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알아보고, 사회가 요구했던 라면과 라면이 이끌었던 삶의 변화를 추적한다. 라면을 사회의 거울로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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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라면은 굶주림의 해결뿐 아니라 다양한 맛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거듭 변신해왔다. 집 밖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용기로 출시됐다. 짜장면·우동·비빔국수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거의 모든 면까지 변형돼 나왔다. 여가 활동 확대, 독신 가구 증가 같은 사회 변화 모두 라면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오늘날 음식은 자기의 취향을 드러내고 즐기는 대상이자 하나의 문화가 됐다. 라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제조사가 제안한 방법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기호에 맞게 여러 제품을 조합하거나 자기만의 새로운 활용법을 만들어내는 소비 계층이 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예 제조사에서 그렇게 응용된 라면을 상품으로 개발·출시한다. 두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짜파구리를 언급한다.


"농심의 짜파게티와 너구리는 이미 1980년대에 출시된 라면으로, 짜파구리는 1990년부터 알음알음 시도된 응용 레시피다. 그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된 2010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미디어에까지 소개되었고,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농심은 이를 제품화하지 않았는데, 이미 짜파게티와 너구리 모두 순조롭게 판매되는 상황에서 굳이 시장을 나눌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 짜파구리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농심은 2020년 4월 용기면으로 짜파구리를 내놓았다."


영화 '기생충' 스틸 컷

영화 '기생충'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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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 짜파구리는 세 가족이 동익(이선균)의 집에 한데 모였을 때 등장한다. 문광(이정은)이 근세(박명훈)와 함께 가족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고 기택(송강호) 가족과 한바탕 싸움을 벌인 뒤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값싼 두 종류의 면이 마구 뒤섞인 형태로 표현한다. 여기에 추가되는 비싼 한우 채끝살은 야영지에서 갑자기 돌아오는 동익의 가족을 의미한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싸고 간편한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라면의 정체성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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