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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은 사람들의 영화 '김씨 표류기'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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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단절·관계에 대해 지금 필요한 질문
표류하는 사람들 어디로갈까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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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 장면·묘사 등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매달려있다.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독촉 전화를 받은 남자는 절망을 안고 투신한다. 그러나 그가 눈을 뜬 곳은 다름 아닌 '한강의 무인도' 밤섬.


그 섬 맞은편에는 63빌딩을 비롯한 도심의 고층 빌딩이 펼쳐져 있지만, 밤섬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단절된 공간'이다.

남자는 밤섬에서 탈출하기를 시도한다. 곧 꺼질 것 같은 핸드폰을 부여잡고 119에 신고를 하고,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격렬히 손도 흔들어본다. 그러나 그의 구조요청은 장난으로 오인돼 번번이 무시되고 만다. 다시 시도한 극단적 선택 기도도 쉽지 않다.


남자는 맞은편 도심을 향해 "진짜 안 보이냐!"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의 외침에 응답하는 이는 없다.


남자는 자신의 삶에서 족쇄와 다름없는 신용카드와 휴대전화를 내팽개치고 밤섬에서의 생존을 시작하기로 한다. 도심의 한복판, 사회와 분리된 공간에서 남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평온함을 느끼며 잠이 든다.

남자가 섬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한 여자는 또 다른 공간에서 자신만의 섬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는 3년째 좁은 방에 자신을 가두고 쌓여있는 쓰레기와 함께 통조림 옥수수 캔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한다.


여자의 주된 일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일이다.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아니다. 여자는 SNS에서 자신의 본 모습은 감춘 채 예쁜 외모와 명품으로 치장한 또 다른 자아에 숨는다.


영화 '김 씨 표류기'는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세계에 갇힌 고립된 두 인물을 그리고 있다. 남자는 회사에서 실직한 뒤 사채로 2억원 가량의 빚을 가진 '신용불량자'이고, 여자는 얼굴의 있는 상처 때문에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뒤 스스로를 유폐하기로 택한 '은둔형 외톨이'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난, 사회의 시각에서는 '실패한 사람'에 해당한다.


영화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 왜 사회로부터 떠밀려 표류하게 될 수밖에 없는지를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꼬집는다. 그리고 이들이 길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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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하는 사람들…지금은 괜찮을까


영화 '김씨표류기'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봉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고 소외된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단절된 삶을 택한 '은둔형 외톨이', 일을 하지도,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NEET)' 등의 용어는 더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나 이를 야기할 수 있는 현상들이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의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를 시행한 적이 없어, 관련 연구로 추정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올해 1~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년 니트족이 53만명으로 청년인구의 10.4%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하면, 올해 청년 니트족은 127만3000명으로 추산된다.


청년 구직자의 절반 이상은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다'는 조사도 있다. 지난 11월 사람인이 구직자(2321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9.8%, 절반을 넘겼다. 스스로를 지금도 은둔형 외톨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42.4%로, 적지 않은 수치였다.


전문가는 은둔형 외톨이, 니트족과 같은 소통 단절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고용난이 개선되지 않고, 경기가 악화하면서 사람들의 심리적 무력감이 깊어졌다. 이들은 루저이고 실패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그들을 찾아내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영화 '김씨 표류기'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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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 그 여자…그들은 어디로 향할까


'김 씨 표류기'에서 각자의 세계에 고립됐던 남자와 여자는 어느 날 운명처럼 이어진다. 여자의 카메라 뷰파인더에 남자의 모습이 포착되면서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아"라고 되뇌던 여자는 민방위 훈련으로 도심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어느 날, 밤섬에 홀로 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여자의 일과는 어느새 SNS를 관리하는 것에서 남자의 하루를 관찰하는 행동으로 바뀐다. 두 사람은 와인병에 담긴 편지와 모래 위에 쓴 글씨로 소통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가둬왔던 울타리를 넘어서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끝에서 우여곡절 끝에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손을 맞잡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나지막하게 묻는다.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 아 유?"


영화는 이 지점에서 소통과 관계가 사람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어쩌면 이 둘은 스스로 고립된 삶을 원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묘사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결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이들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현실의 벽을 어떻게 견뎌 나갈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관객들은 이들의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숨도록 했던 세상이 지속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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