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질 바이든, 영부인 되더라도 교직으로 돌아가고 싶어해"
[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역대 최초로 본업을 따로 둔 영부인이 될 질 바이든(69) 여사.
미국의 세컨드레이디에서 4년만에 퍼스트레이디 자리에 오른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 8월 남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를 수락할 때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는 가르침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2년제 전문대인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의 영작문 교수인 바이든 여사는 '조용한 내조'로 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남편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돕느라 1981년 딸 애슐리가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휴직했다. 자신이 남편의 내조에 충실하지 못해 선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면 후회가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여사가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전히 교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본업을 따로 둔 미국 영부인이 될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2009년 남편이 부통령이었을 때도 유급 일자리를 가진 미국의 첫 세컨드레이디였다.
그녀의 교육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대선 캠프에서 교육 관련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는가 하면, 세컨드레이디 당시 남편의 해외 순방시 전용기인 에어포스투에서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한 일화는 유명하다.
웨스트 체스터대와 빌라노바대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50대 중반이던 2007년에는 델라웨어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년간 고등학교 교사로 일한 뒤 델라웨어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25년간 영어교수로 재직하다 남편이 부통령이 되자 현재의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은행원의 네 딸 중 장녀로 태어난 바이든 여사는 15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정도로 독립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박사학위 논문 발표시에도 남편의 후광이라는 선입견을 피하기 위해 바이든이란 성 대신 결혼 전 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5년 24세 대학생이던 바이든 여사는 8살 연상의 바이든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바이든 후보는 첫 부인과 사별한 이후였고, 바이든 여사 역시 이혼한 상태였다. 2년간의 연애 끝에 1977년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바이든 여사는 세컨드레이디 시절인 2015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여성가족부 행사에 참석해 "여성이 잠재력을 발휘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밝혀, 직장생활과 학업, 육아를 병행해온 워킹맘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바이든 여사는 선거 과정에서 '조용한 내조'로도 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부통령 후보 선정을 비롯해 중대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바이든 후보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린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가 지명된 후 그는 남편과 자신 둘 모두의 선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이든 여사는 2015년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바이든 후보의 장남인 보의 자리를 채우면서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고 한다.
WP는 바이든 여사가 현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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