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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판지 시장 문제점 '속속'…"대기업 상생 노력 보여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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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업체 한 직원이 골판지 상자를 밴딩 기계로 묶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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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심리적 가수요가 쏟아지고 있다." vs. "일방적 인상 철회, 가격 현실화하라."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의 골판지 원지 제조 업체인 대양제지공업의 화재로 생산이 전면 중단된 이후 국내 골판지 시장의 해묵은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업계 내부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제지 업체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원지의 가격을 올린 뒤 뒷짐을 지고 있고, 골판지 수급 차질을 우려한 원단 업체들은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원지를 더 사들이며 이른바 '사재기'를 하고 있다. 그러자 상대적인 약자로 사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인 영세 업체들은 '일방적 원가 인상을 철회하고, 가격을 현실화하라'면서 생존권을 건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골판지 업계에 따르면, 대양제지 화재 이후 주요 원지 생산 업체인 태림페이퍼와 아진피엔피가 원지 가격을 20~25%가량 올렸다. 지난 16일에는 태림포장 등 원단 업체들이 박스업계에 가격 인상을 통보했다. 정확한 인상 폭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업계는 15% 정도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지 업체는 지난 7월 수입폐지 신고제 시행 후 골판지의 원재료인 폐지 수입이 줄었고, 긴 장마와 폭우 등으로 국내 공급도 감소했기 때문에 원지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골판지 원지는 120% 가량의 폐지로 100%의 원지를 만들어 낸다. 인상 시기를 재고 있던 제지 업체들에게 대양제지의 화재는 공급부족을 빌미로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핑계를 준 셈이다.

그러나 한국박스산업협동조합(박스조합)은 현재 수입폐지 가격은 지난 6월 이후 꾸준히 하락해 현재 t(톤)당 178달러로 전월 대비 10% 가량 하락했다고 밝혔다. 국내폐지도 올 상반기 소폭 올랐지만 5년 평균 ㎏당 91원에 못 미치는 76원에 거래되고 있다. 올 들어 t당 60원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한 이후 국내 수급 상황에 따라 안정적 소폭 인상을 통해 공급이 유지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폐지공급은 안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지 업체 관계자는 "폐지공급이 과잉이 되면 가격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수출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업체도 있다"고 털어놨다. 박스조합 측이 "골판지제지 대기업이 가격 인상 전 골판지 제지의 수출을 자제하고, 적자 해소를 위한 충분한 자구노력과 함께 연관 업계와의 상생을 위한 소통이 전무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국내 골판지 박스 시장은 '골판지 제지-골판지 원단-골판지 박스'의 단계로 이뤄진다. 제지사가 원지를 생산해 원단 업체에 공급하고, 원단 업체는 원지로 골판지를 제작해 박스 업체에 공급하거나, 직접 박스를 만들기도 한다. 대기업(제지사)은 제지, 원단, 박스를 모두 제조하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제지 시장의 90%, 원단시장의 70%, 박스 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해 시장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골판지 원단 시장 점유율은 골판지 원단과 박스를 함께 생산하는 52개 회원사(대기업 계열사 포함)로 구성된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골판지조합)이 70%를, 나머지 30%의 시장으로 2300여개 중소회원사(박스조합)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생존하는 형태다.


골판지 대기업은 이번에 원지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박스제조 계열사의 박스가격은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스조합은 "영세 업체들을 고사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원지가격 인상으로 박스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영세 업체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횡포인 셈이다.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골판지조합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시 한다. 반면, 영세한 다수의 중소 업체로 구성된 박스조합은 그 어떤 조건보다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박스조합 관계자는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자자재 가격은 인상하고 최종 생산제품의 수요처 가격은 인상하지 않는 비상식적 거래행위는 반드시 시정돼야 하고 규탄받아 마땅하다"면서 "지난 2017년 골판지 박스의 제 값 받기 운동에 한 목소리를 냈던 제지 대기업은 박스 제 값 받기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골판지제지 대기업은 유예기간 없는 갑작스러운 일방적인 인상 통보를 즉각 중단하고 업계와 소통해 인상 범위를 상생의 정신에서 재검토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어 그는 "박스업계의 이런 요구사항들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와 시장질서 회복을 위한 법적수단 등 생존을 위한 모든 대응책을 강력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대해 김진무 골판지조합 전무는 "지금 중요한 것은 공급의 문제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단 업체들이 제지사에 10t 트럭 10대분의 원지를 요구하면 5~2대 분량만 공급받는 실정"이라면서 "일본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t당 5만원 이상을 얹어주고 몇 천t 정도 수입계약을 한 업체도 있지만 여전히 물량은 모자란다"고 말했다.


원단업체들은 원지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심리적 공포를 그 만큼 크게 느낀다는 의미다. 제지업체 관계자는 "원단업체의 사재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이를 "심리적 가수요가 쏟아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원지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해 그 전에 물량을 더 확보하자는 심리와 연말 성수기와 내년 설 성수기가 닥치기 전에 물량을 미리 확보해 놓자는 복합적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전무는 이와 관련 "업체들에 가수요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주제지와 페이퍼코리아 등 몇몇 제지사들에 지종전환을 통해 공급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고, 약속을 받은 상태"라면서 "11월 중순 쯤 전환점이 올 것이다. 이번 주와 다음 주가 피크"라고 전망했다. 2주 정도면 공급 감소로 인한 심리적 공포가 어느 정도 진정돼 공급난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의의 공급 부족 사태로 국내 골판지 시장이 그동안 안고 있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해결책은 난망"이라면서 "시장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상생을 위해 업계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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