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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탈레반은 도망쳤지만…누구도 승리를 말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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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 실화 영화 '아웃 포스트'

[이종길의 영화읽기]탈레반은 도망쳤지만…누구도 승리를 말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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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여덟 명 전사하고 서른한 명 부상한 키팅진지 전투를 바탕으로 제작

실감나게 재현한 세트·롱테이크 촬영으로 참혹했던 상황 사실적으로 전달

불리한 지형·지지부진 소통·첨단무기 맹신 속 평범한 청년들의 투쟁 보여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다룬 영화들 대부분이 실화에 바탕한다. 승리를 장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폴 케이티스 감독의 '킬로 투 브라보(2014)'는 지뢰밭에 고립된 영국군의 사투를 그린다. 파벨 룽긴 감독의 '라스트 배틀(2019)'은 무자헤딘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는 옛 소련군을,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2013)'는 미군 특수부대원 열아홉 명이 전사한 '레드 윙 작전'을 각각 묘사한다.

다음 달 개봉하는 로드 루리 감독의 '아웃 포스트'도 참사를 가리킨다. 미군 여덟 명이 전사하고 서른한 명이 부상한 키팅진지 전투다. 생생하게 재현된 세트와 롱테이크 촬영으로 참혹했던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전사한 병사들의 사진과 살아남은 전우들의 회고를 더해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들은 특별 임무를 부여받은 군사 스파이나 특수부대원이 아니다. 평범한 보병이다. 탈레반에 개인적 감정도 없다. 그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한다. 루리 감독은 평범한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온갖 요소에 주목한다. 미숙한 전초기지 설치, 지역 주민과 소통 실패, 첨단 무기 의존 등등. 미국이 아프간에서 20년 가까이 고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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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지형

탈레반은 2004년 파키스탄 파슈툰족 지역에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미국은 아프간으로 병력과 무기가 넘어오지 못하게 감시해야 했다. 국경을 따라 일렬로 전초기지를 세웠다. 파키스탄 국경에서 약 16㎞ 떨어진 키팅진지는 경계작전을 수행하며 탈레반의 침투에 대비하는 일반전초(GOP)였다. 그러나 불리한 지형 탓에 18개월여 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공격받는 소초(GP)나 다름없었다.


키팅진지는 아프간 누리스탄 주 캄데쉬 계곡의 낮은 구릉에 마련됐다. 접근성이 높아 보급은 수월했으나 고지대의 현지 주민이나 탈레반에게 병력의 움직임이 그대로 노출됐다. 열악한 환경은 '아웃 포스트'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파견된 클린트 로메샤 하사(스콧 이스트우드)와 마이클 스쿠사 병장(스코트 코피)은 산으로 사방이 막힌 진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탈레반이 내려다보면 전망이 죽이겠지? 저쪽 덤불에서 나타나 몇 발 쏘고 내빼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진지를) 고지 정상에 차려야 되는 거 아니야?" "까라면 까, 스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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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소통


미군은 불리한 지형에도 키팅진지를 설치했다. 현지 주민들과 친선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 노력은 '아웃 포스트'에서 벤자민 키팅 대위(올랜도 블룸)를 통해 나타난다. 마을 장로들에게 끊임없이 협력을 요구한다. "우리는 탈레반과 주민들을 분리하려는 겁니다. 그래야 주민들이 희생되지 않습니다. 도와주신다면 돈과 계약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업도 지원해 드릴 거고요."


협상은 애당초 이뤄질 수 없었다. 아프간에서 집단 정체성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부족, 종족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국가(國歌)에 등장하는 부족만 열네 집단이다. 제법 규모 있는 부족으로 파슈툰, 타지크, 우즈베크, 하라자가 꼽힌다.


이들 사이에는 오랜 적대와 반목의 역사가 있다. 파슈툰족은 200년 넘게 아프간을 지배했다. 그러나 1992년 타지크족ㆍ우즈베크족 연합 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겼다.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파슈툰족은 지속적으로 세력을 유지할 힘이 탈레반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의 지도자나 정책 결정자들은 아프간의 복잡한 부족 관계를 알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의도치 않게 다수 부족을 적대시했다. 그 결과 탈레반이 세력을 확장하는 틀만 제공하고 말았다. 파키스탄은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 전쟁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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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물자와 첨단 무기 맹신


현지 주민들과 지속적인 마찰에 지친 미군은 키팅진지를 사실상 GP로 사용했다. 병사들은 외진 소초를 왜 지켜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계속된 기습에 천천히 지쳐갔다. 그렇다고 패배를 생각한 건 아니다. 당시 미군이 전투기를 항시 상공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30분 안으로 전투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웃 포스트'에서도 AH-64 아파치가 등장하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실제로는 F-15E 전투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높은 고도를 비행하는 특성상 지상 통제사의 지시 없이 함부로 폭격할 수 없었다. 탑재된 900㎏짜리 폭탄은 반경 500m 이내의 생명체를 절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무기였다. 자칫 미군 사상자가 대량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난처한 문제는 AH-64 아파치에도 있었다. 키팅진지 방향으로 급강하하자 산 중턱에서 날아오는 탈레반의 RPG-7 휴대용 로켓에 그대로 노출됐다. 그 위험성은 '론 서바이버'에 잘 묘사돼 있다. CH-47 헬기에 탑승한 구조병력 전원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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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한 병사들은 제대로 싸우기도 어려웠다. 보급용 소총 M4A1 카빈이 지속적인 발사를 견디지 못하고 고장 난 까닭이다. 그들의 할아버지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M16을 다루며 겪은 문제에 또 봉착해버렸다. 탄약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아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무차별 폭격하라는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까지 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운 좋게도 미군은 1만6000㎏짜리 정밀유도 폭탄에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도망하는 탈레반을 보며 누구도 승리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스토니 포티스 대위(트레이 터커) 앞에서 눈물 흘리는 앤드루 밴더맨 중위(테일러 존 스미스)처럼 지금도 슬픔에 잠겨 있다. "죄송합니다. 울 때가 아닌데…." "울어도 될 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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