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명장면 완성시킨 위대한 영화음악 뿌리는 클래식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원본보기 아이콘

20세기 초반 프랑스 무성영화 시대. 영화관으로 피아노까지 들여 영사 도중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거나 오케스트라 피트에 풀편성 오케스트라 반주까지 붙여 영화 관람도 보조했다.


영화 '기즈 공작의 암살(1908)'에 쓰인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작품이 최초의 영화음악으로 평가된다. '막간(1924)'의 에릭 사티(1866~1925), '뉴 바빌론(1929)'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처럼 초기 영화음악을 담당한 인재는 주로 클래식 작곡가였다.

오페라는 으레 작곡가와 연출가를 중심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영화는 감독과 각본가를 우두머리로 미술·촬영·특수효과·편집·녹음의 방대한 집단창작에 음악이 동참하는 분업 형태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클래식 작곡가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요즘도 작곡가를 음악 부분만 담당하는 일개 제작 인력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르튀르 오네게르(1892~1955), 다리우스 미요(1892~1974)는 영화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영화 음악에 간단히 음악만 제공했을 정도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말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으로부터 촉발된 음향기록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1930년대 이미 영상·음성·음악이 동시에 나오는 '발성영화(talkie)' 시대가 정착했다. 영화가 장편으로 늘면서 영화 감독과 제작사는 작품성 제고 및 대중성 확보를 위해 영화음악과 능숙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절실해졌다.

그 결과 귀족, 부르주아, 악보 출판업자 혹은 음악 조직으로부터 위촉받아 신곡을 쓰던 클래식 작곡가들도 영화의 완성도와 흥행까지 고려한 상업 용도의 신작 의뢰에 응하게 됐다. 이렇게 예술음악·상업음악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20세기 영화감독·작곡가 사이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많은 명곡이 탄생했다.


20대까지 오페라·오페레타 작곡가로 촉망받던 에리히 코른골트(1897~1957)는 영화 '한 여름밤의 꿈(1935)'에서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이 작곡한 동명의 극 부수 음악을 편곡해 영화음악에 입문했다. 1938년 독일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미국에 망명한 코른골트는 독일식의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는 영화음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할리우드에서 파격적인 대우까지 받았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영화음악 작곡가 헨리 맨시니와 주인공 오드리 헵번  (c) BBC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영화음악 작곡가 헨리 맨시니와 주인공 오드리 헵번 (c) BBC

원본보기 아이콘

무성영화 시절부터
현대 블록버스터영화까지
장면과 정서 엮어주는
구심점 영화음악

코른골트는 바그너풍의 '라이트모티프(되풀이되는 음악의 주제)' 기법을 영화음악에 응용했다. 후기 낭만주의 스타일의 장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영화 속 역사적 소재와 어울려 그는 1936년·1938년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그의 같은 작품이 영화와 클래식 콘서트에 함께 쓰이면서 그는 영화관과 클래식 공연장의 울타리를 허문 최초의 작곡가가 됐다. 코른골트 본인은 최고의 영화음악으로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오페라 '토스카'를 꼽을 만큼 상업성에서도 고전적 클래식 어법에 매달렸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1938년 미국 체류 중 디즈니 최초의 만화영화 '백설공주(1937)'를 보고 감명받아 월트 디즈니(1901~1966)와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 영화음악 작곡 논의가 오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프로코피예프는 소련으로 돌아갔다. 이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1898~1948)의 제안으로 '알렉산더 네프스키(1938)'의 음악을 맡았다. 유명한 얼음 위 전투 장면 중 기마군단의 공격이나 병사들의 익사 장면에서 음악과 영상이 완벽한 일치를 이룬다.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조르주 사둘(1904~1967)은 "에이젠슈타인이 저서 '사운드 영화 선언'에서 주창한 화면과 사운드의 대위법적 효과를 의도한 수직의 몽타주가 실천된 작품"이라고 평했다.


클래식 역사에서 니노 로타(1911~1979)는 교향곡 1-3번, 오페라 '피렌체의 밀짚 모자' 등 말년에 남긴 트롬본, 바순 협주곡을 통해 20세기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분류된다. 로타는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과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귀국 후 클래식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는 1951년 신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와 '하얀 추장'으로 만난 이후 펠리니의 전작품에서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로타의 음악은 펠리니의 영상에 완전히 동화돼 영상과 음악을 함께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선율에 이탈리아적 향수를 담는 특유의 기법이 일품이다. 시나리오 초반 단계부터 펠리니가 구상에 대해 말하면 로타는 멜로디를 시연할 정도였다.


로타는 르네 클레망(1913~1996)의 '태양은 가득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사랑의 테마(1972)'를 함께 했지만 "본업이 클래식이고 영화음악은 취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자란 헨리 맨시니(1924~1994)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플루트와 피콜로를 배웠다. 그는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진학해 이탈리아 작곡가 마리오 테데스코(1895~1968), 12음 기법으로 유명한 에른스트 크레네크(1900~1991)를 사사했다. 1952년 유니버설 영화사와 손잡고 B급 호러영화의 극음악을 맡다가 1960년대부터 여배우 오드리 헵번(1929~1993)이 출연한 작품의 음악에 투입됐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헵번이 부른 '문 리버'는 영화음악의 고전이 됐다. 복잡한 편성의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한 대만 있어도 충실하게 낭만적인 멜로디만으로 극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곡이다. 특히 '술과 장미의 나날'은 저명 클래식 바이올린 주자들이 크로스오버 작업에서 즐겨 찾는 인기곡이다.


지휘와 작곡, 재즈와 클래식를 넘나드는 탁월한 재능으로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린 앙드레 프레빈(1929~2019)은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투신했다. 1940년대 나치의 박해로부터 벗어나 독일에서 미국 서부로 이주한 프레빈은 고교 시절 무성 영화관에서 즉흥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곧이어 로스앤젤레스의 영화업계와 줄이 닿았다.

지난 6일(현지시간) 타계한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c) Gonzalo Tello

지난 6일(현지시간) 타계한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c) Gonzalo Tello

원본보기 아이콘

영화 뛰어든 클래식 작곡가들
시네마 천국·미션 등
멜로디만 들으면 아는 명곡
고전적 클래식 기법에 충실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MGM이 프레빈에게 편곡·영화음악 작곡을 맡겼다. 그는 '포기와 베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영화음악 작곡으로 30대 초반에 네 차례나 아카데미 음악 관련 상을 받았다. 영화음악에서 프레빈은 하드코어의 재즈 팬을 위한 음악보다 달콤한 무드 음악으로 대중성부터 고려했다. 프레빈에게 1960년대 중반까지 영화음악 작곡은 명성 유지와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분위기를 즐겁고 흥겹게 만들지언정 음악 어법 만큼은 고전적인 클래식 문법에 충실했다.


지난 6일 91세로 타계한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는 1960년대만 해도 저예산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의 작풍을 풍성하게 만드는 독창적인 사운드 메이커로 각광받았다.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1977)'을 시작으로 롤랑 조페의 '미션(1986)',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1987)'에 삽입된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은 아카데미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이윽고 '시네마 천국(1988)'으로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모리코네는 휘파람, 교회 종소리, 시계 소리, 총성을 특이한 방식의 사운드로 영화에 도입한 선구적인 작곡가다. 일반적인 스튜디오 편곡으로는 만들 수 없는 질감을 음악에 주조한 것이다. 이런 감각은 청년 시절 실험적인 즉흥 작곡가 동인으로 활동하고 이탈리아 RCA 레이블의 편곡자로 활동하면서 익힌 수완이다.


그는 영화 작업의 결과물을 '사운드트랙'이 아니라 '영화를 위한 음악'으로 칭해주길 바랐다. 말년에는 영화음악에서 클래식 작곡으로 돌아섰으나 후속작을 공개하진 않았다.


프레빈과 모리코네가 떠난 시대에 최고의 영화음악가는 존 윌리엄스다. 윌리엄스는 뉴욕 출신으로 줄리어드 음악원 피아노과에서 로지나 레빈 문하에 있었다. 1960년대 맨시니가 작업하는 영화음악에 피아니스트로 참여하면서 할리우드와 연결됐다.


윌리엄스는 테데스코에게서 익힌 오케스트레이션을 경력 초기부터 유감없이 발휘했다. 1971년 '지붕 위의 바이올린'으로 아카데미상을 받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조스(1975)'로 다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지휘자로서는 아서 피들러(1894~1979) 이후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하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타이틀 주제가도 작곡했다.


그는 '스타 워스', '인디아나 존스', '주라기 공원', '해리 포터' 같은 블록버스터에서 공간감각을 청각으로 펼치는 능력이 특출했다. 또한 이츠하크 펄먼의 바이올린 연주가 심금을 울리는 '쉰들러 리스트(1993)'에서는 작곡가 특유의 클래식 감성이 여물어 있었다. 최근에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빈 필하모닉 지휘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