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뉴딜은 성공한 정책인가?
1930년대 발생한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불황이었다. 1920년대는 대체로 경기가 호황이었다. 1929년 8월 정점을 찍은 미국 경제는 2개월 후에 주식시장의 폭락을 경험했고 곧 이어 1930년부터 대공황에 진입했다. 대공황이 저점에 이른 1933년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929년에 비해 26.7% 감소했고 실업률은 25.2%로 1929년에 비해 22%포인트나 증가했다.
미국의 주식가격은 1929년 정점을 찍은 이후 1933년에는 1929년의 10%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나고 많은 은행이 파산했다. 기업고정투자와 주택투자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추락했다. 국가 사이에 일어난 무역전쟁 때문에 국제무역은 정지되다시피 했다. 곡물가격의 하락과 미국 중서부에 닥친 장기간의 가뭄으로 수많은 농부들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했다.
1932년 선거에서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1933년 3월4일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국민의 일자리를 복원하고, 저축을 보호하며, 병자와 노인을 구호함으로써 번영을 도모하는 것이 첫 번째 우선 순위임을 천명하고 농업과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첫 100일 동안에 13개 주요 법안을 통과시켰다.
루스벨트 경제정책의 핵심은 소위 뉴딜정책이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핵심으로 하는 정부투자 및 지출정책이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대공황과 그 극복 과정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해결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1933년에 저점을 찍은 미국 경제는 1937년에 이르러서도 실업률 14.3%로 여전히 깊은 불황 가운데 있었다. 뉴딜정책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업률과 대공황의 깊은 여진은 지루하게도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뉴딜정책은 실패한 정책이었다. 대공황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극적으로 종결된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전부터도 유럽으로부터 군수물자수요가 증가했고 일본의 공격 이후에는 전면전에 돌입한 가운데 전쟁 수요가 더욱 증가했다. 1939년과 1944년 불과 5년 사이에 미국의 GDP는 거의 두 배로 증가하고 실업률은 1944년 1.2%로 하락했다.
뉴딜정책이 아니라 대공황을 해결한 것은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강제 지출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한 것이다. 그 60년 뒤에 뉴딜을 모방한 것이 소위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무효했음은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정부의 빚만 GDP의 250%까지 증가했다. 어느 나라도 전쟁의 경우와 같은 강제적이고도 막대한 재정지출을 일시에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재정을 이용해 큰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다.
왜 미국의 뉴딜도 일본의 확장적 재정정책도 효과가 작거나 없었던 것일까? 근본적 이유는 경제의 구조에 있었다. 루스벨트는 뉴딜과 함께 노동조합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공정거래를 훼손하는 법과 정책을 도입했다. 1990년대 노동, 금융시장을 포함한 일본의 경직성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 1930년대 미국과 1990년대 일본과 무엇이 다를까? 지금은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쓸까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조적 문제들을 돌아보고 고쳐야 할 때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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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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