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했다. 특별연설에는 남북 관계의 물꼬를 터보자는 의지가 녹아 있다. 연설은 "북ㆍ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찾아서 해나가자"는 소통의 메시지, "(남북이) 방역 협력을 하면 아주 현실성 있는 사업"이라는 신뢰 구축에 대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이런 대통령의 선의의 메시지에 대해 북한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북한의 한 선전 매체는 "'관계 개선'과 '교류ㆍ협력'을 떠들고 돌아앉아서는 동족을 해칠 흉심으로 가득 찬 이중적 행태에 분노하고 위선에 침을 뱉는 것은 당연"하다며 메시지의 무게를 평가절하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4ㆍ27 판문점선언 2주년에 보낸 메시지도 북한에 의해 '표리부동'으로 폄훼됐다. 이런 북한의 폄훼는 상당 부분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최근 한국군 감시초소(GP) 조준 사격을 애써 '우발적'이라고 하며 오히려 북한의 심기를 챙기는 모습이 재연됐고 북한의 한국 폄훼 행위는 심해지고 있다.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눈감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민의 자긍심도 함께 훼손되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국민은 높아진 국격(國格)만큼이나 남북 대화와 협상에서의 당당함도 요구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와 협상에서 저자세로 일관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빈번히 봐온 국민이 비판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는 주눅들 이유가 없는데도 당당함을 잃어버린 정부 태도 때문이다. 물론 대화와 협상의 단절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당함을 잃어버린 순간 협상의 주도권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시쳇말로 대화와 협상의 기본은 '밀당(밀고 당기기)'이라고 한다.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어 먼저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것도, 상대에게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나의 약점이 노출돼 얻는 것보다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밀당의 기본이다. 물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이런 밀당의 기본은 남북 관계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밀당의 기본을 무시한 채 대화와 협상에 매달리는 모습만 연출해왔다. 이로 인해 성과는 고사하고 주도권마저 잃어버린 현실은 더 큰 문제다.
과거에 대한 반추는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다. 지금까지 남북 대화와 협상이 실질적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 것은 평화 이론의 성공 조건을 무시한 결과다. 따라서 평화 이론의 환상에서 벗어나 평화 이론의 성공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협상 성공의 조건은 지금까지의 협상의 관행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협상의 관행은 남북한이 직면한 입장이 어떤가에 따라 바뀔 수 있고 또한 바뀌어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막힌 대화 창구를 열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진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협상에 대한 조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내 임기 5년 내에 성과를 내겠다'라는 조급증이 실패의 원인이었고, 우리의 조급증이 북한 체제의 절박감을 완화ㆍ해소해줬다는 점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조급증을 버리면 북한이 직면하는 협상에 대한 절박감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한국 주도의 협상도 가능하다는 방증이다.
협상 과정에서 정부의 조급증 유지 여부가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성공 여부와 직결된다. 지금의 조급증은 장기적 안목에서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은 긴 안목에서 조망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야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성공을 통해 한반도의 '취약한 평화'를 '건강한 평화'로, 주권부재(主權不在)의 김일성 민족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자유민주적 민족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영기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초빙교수·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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