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바스트(Bast)라는 신은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여신으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했다. 그러니 고양이를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었겠는가. 심지어 고양이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 장례를 치른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한꺼번에 고양이 미라 30만개 이상이 발견된 적도 있다. 고양이 미라 옆에 사후 먹이가 될 쥐 미라까지 만들어 놓은 세심함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얼마나 끔찍이 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먹을 것이 귀했던 고대에 쥐를 막아서 식량을 보호해주는 고양이보다 더 든든한 수호자가 또 어디 있으랴.
세월이 흘러 이집트가 망하고 로마제국으로 편입됐을 때 고양이를 키우던 풍습도 로마에 전해졌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교도 근절 방법으로 고양이를 말살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이교도가 고양이를 숭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검은 고양이는 유럽 전역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다. 죽어가는 고양이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사실은 악마의 비명이라고 믿었던 기독교인들의 손에 엄청난 수의 고양이가 수난을 당했다.
14세기 유럽에는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 결과 2억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가량으로 엄청난 숫자였다. 참혹한 전염병의 원인으로 고양이가 거론됐다. 이 못된 병의 숙주라고 여긴 것이다. 고양이들이 많은 곳에서 흑사병이 창궐했다는 설명은 중세 유럽인들에게 그럴 듯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원인은 쥐였고, 쥐가 많으니 이를 먹고 사는 고양이가 많아 보였을 뿐이다.
고양이를 잡으며 사람들은 가톨릭 사제의 조언대로 신에게 빌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일반인의 사망률보다 신을 섬기는 사제의 사망률이 더 높았다고 한다. 흑사병을 막아주던 고양이를 처형하니, 교회에서 흑사병이 더 심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치료는커녕 사제가 먼저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대중은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갔다. 그렇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던 중세가 막을 내렸다. 전염병이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결과였다.
흑사병과 고양이 이야기에서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아주 비슷한 구석을 발견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바깥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관심도가 부쩍 높아진 '게임'. 이는 흑사병이 돌던 시절 고양이와 매우 닮았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전인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현상을 '게임이용장애'라는 명칭의 질병코드로 등재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지금, 게임은 사람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연대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정신장애의 증상으로 지목되던 게임이 무력하고 무료해진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중세시대 고양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게임 이용시간과 게임 영상에 대한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럼에도 정신장애가 증가했다거나 게임과 관련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게임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듯해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걸맞은 게임의 위상이 정립될 수 있도록 WHO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기대해 본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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