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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달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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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달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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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도구 없는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날을 세운 무기를 만든 때는 20만년 전이니까 이전 200만년은 도구 없이 사냥에 성공해서 살아남은 셈이다.


첫째로 무리를 이뤄 협동을 한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매우 훌륭한 냉각시스템을 보유한 덕이 컸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보다 털이 적고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할 수도 있어 오래 달릴 수 있다. 뜨거운 아프리카 초원에서 밍크코트를 입고 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무리 빨리 달리는 동물도 그들이 지닌 '털옷' 때문에 인간만큼 오래 달릴 순 없다. 인간들이 무리를 이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날을 다니면 결국 맹수들도 항복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 몸은 오래달리기를 잘하도록 만들어졌다.

뜻밖의 변수는 농업화였다. 농업화를 거치면서 인류는 달리기보다는 노동을 반복하는 형태로 움직이는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산업화 이후엔 그 움직임조차 급격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눈동자와 손가락만을 이용할 정도로 급속히 줄고 있다.


공교롭게도 여성들에게 있어선 '움직임을 속박당한 역사'라 해도 될 정도로 참담한 시간이 흘렀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성은 달릴 수조차 없었다! 때는 1967년. 제71회 미국 보스턴마라톤 대회에서 뛰던 스무 살 대학생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의 어깨를 잡아챈 조직위원이 있었다. 그는 살기를 띤 얼굴로 달려들더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여성이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지하려 달려든 것이다. "번호표 내놓고 내 레이스에서 꺼져!"란 말과 함께.


상황을 담은 사진은 라이프지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장의 사진'에 뽑혔을 만큼 유명해졌다. 당시 그 사진 덕분에 '여성의 달릴 자유'가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의학계에서 여성이 오래달리기를 하면 생식기관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여성의 다리가 두꺼워지고 가슴에 털이 난다는 이유에서 달리기를 금기시했다. 그 조직위원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캐서린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마라톤을 완주했지만 조직위로부터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이 캐서린의 길을 막은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여성들의 오래달리기 능력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아이를 낳은 30대 후반 여성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시대다. 세계 최고의 산악 달리기 대회인 '2018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TMB)'에선 영국의 36세 여성 소피 파워가 16시간을 달리다가 3개월 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도 상위권에 올랐다.


캐서린은 어땠냐고? 2017년 70대의 나이로 바로 그 보스턴 마라톤에서 완주했다. 여성이란 이유로 달리던 도중에 가로막힌 지 50년 만에 이룬 쾌거다. 보스턴도 인정했다. 조직위원회 측은 그녀에게 사과를 하면서 50년 전 낚아채려 했던 그녀의 번호 26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며 그녀를 기렸다.


멕시코의 코퍼 협곡에 숨어 살게 된 타라후미라 부족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그들은 아직도 뛰어다닌다. 7080세대까지도 달린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모든 부족원이 울트라 마라톤만큼의 거리를 뛰어다닌다. 그들은 심장질환, 콜레스테롤, 암, 범죄, 폭력, 우울증 같은 현대의 질병들로부터 자유롭다. 하버드 대학교와 유타 대학교 등 미국 유수의 대학 연구진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대상이다.


우리는 달려야 산다. 고대 인류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몸은 그렇게 설계돼 있다고 한다. 오래 달려 심장에서 온 몸으로 피가 돌게 하고 허파에서 품은 산소를 온 몸 구석구석 전하고 노폐물을 땀으로 배출시켜야 아프지 않게 된다. 예전엔 사냥하기 위해 뛰었다면 지금은 살기 위해 뛰어야 한다. 그리고 잊기 위해 달려야 한다. 나를 위협하는 스트레스를 떨치기 위해.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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