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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4일된 아이 지키지 못한 미혼모… 법원이 선처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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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서 떨어트리고 방치해 사망하게 한 혐의
1·2심 모두 집행유예… "사회·국가 책임 커"

지자체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 운영하지만
정원 한정돼 입소 제한… 접근 장벽 존재해
현실에선 미혼모 2만 넘고 4세미만 자녀 7천

생후 14일된 아이 지키지 못한 미혼모… 법원이 선처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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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 매우 크다."


19세 나이에 아이를 출산해 홀로 키우다 결국 아이를 사망케 한 미혼모에 대해 법원이 이례적인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시신을 유기한 혐의까지 더해 중형이 불가피하지만, 미혼모와 그 자녀를 국가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동시에 물은 것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윤종구)는 최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A(22ㆍ여)씨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 160시간과 아동학대 치료강의 40시간 수강명령도 함께 내렸다.


A씨는 2017년 7월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임신중절수술(낙태)을 생각했으나 시기를 놓쳤고 결국 그해 11월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이후론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한 빌라에서 아이를 홀로 키웠다. A씨는 생후 14일이 된 아이를 평소처럼 씻긴 뒤 수건을 가져오려고 일어서다가 안고 있던 아이를 떨어뜨렸다. 아이는 욕실 세면대에 부딪친 뒤 바닥에 떨어졌다. A씨는 심하게 우는 아이를 달래며 분유를 먹였다. 아이가 분유를 토하긴 했지만 이내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A씨는 며칠 뒤 시신을 비닐봉투에 담아 노상 쓰레기 적치장소에 몰래 버리고 말았다.


1심과 2심은 모두 A씨의 혐의가 무겁다고 판단했다. 특히 아이를 즉시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에 미뤄 유기의 고의가 있다고 봤다. 다만 양육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 제때 구호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보고, 일반적인 아동학대치사 범죄와 죄질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법률상 아동학대치사죄의 형량 범위는 징역 2년6개월부터 18년6개월이다. 하지만 A씨처럼 미필적 고의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양형 기준에 따라 징역 5년 이하로 감경이 가능하다.

앞서 1심은 A씨의 불우한 성장 환경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하는 시절을 보내다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연락이 닿은 피고인의 어머니가 피고인을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을 다짐하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배경에 주목하는 판결을 내놨다. 이 사건에는 A씨의 잘못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도 영향을 미쳤다.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법원의 지적처럼 A씨와 같은 미혼모의 상당수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 아이를 홀로 양육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여성가족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게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최대 1년6개월간 숙식은 물론 의료급여 혜택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본생활지원형 시설은 전국적으로 22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A씨가 거주하던 의정부에는 단 한 곳도 없다. 여가부는 "주소지에 따른 입소 제한은 두고 있지 않지만 정원을 고려해 입소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며 현실적인 접근 장벽을 인정했다. 전국 기본생활지원형 시설 22곳의 정원은 규모에 따라 9~50명으로 평균 25명 정도다. 반면 A씨와 같은 미혼모는 2018년 기준 2만1254명에 달했다. 또 이들 손에 길러지는 4세 미만 미혼모 자녀는 7342명이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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