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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코로나19,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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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코로나19,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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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세상은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9살 소년 오스카 셀. 9ㆍ11 테러는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나는 여전히 무슨 이유에서인지 샤워를 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은 더더욱 그랬다." 오스카를 두렵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세균, 비행기, 불꽃놀이, 공공장소의 아랍인, 주인 없는 가방, 콧수염을 기른 사람, 연기, 높은 건물, 터번….


미국 소설계의 '신동'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펴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테러를 극복해가는 소년의 성장 드라마다. 오스카는 아버지의 흔적을 집요하게 쫓는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 테니까요."

소설 속 오스카가 그랬듯 소설 밖 수많은 오스카도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뉴욕 시민들은 작은 축포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낯선 이웃의 방문을 경계한다. 외국인 비자 발급은 한층 까다로워졌고 뉴욕경찰(NYPD)은 더욱 거칠어졌으며 반(反)이민 정책은 더 격렬해졌다. 그렇게 미국의 역사는 9ㆍ11 전과 후로 나뉘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도 '그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테러만큼 공포스러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급습. 개학이 연기되고 교회가 문을 닫고 재택근무를 하는 전대미문의 위기. 두 달 넘게 코로나19와 싸우는 방역 당국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9ㆍ11 테러로 안보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듯이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뀔 것이다."(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 코로나19가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기존 질서를 허물고 있다는 탄식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주문은 더 구체적이다. "'아파도 나온다'라는 문화를 '아프면 쉰다'로 바꿔야 한다. 재택근무가 일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형태를 마련해야 한다." 말인즉슨, 이제 우리는 좋든 싫든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손 씻기부터 재택근무까지, 작은 습관부터 산업 지형까지,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바뀔 테고 혹은 어쩔 수 없이 변할 것이고.

코로나19를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위기'로 규정한 유발 하라리도 '필연적인 변화'를 역설했다. "폭풍(코로나19)이 지나간 자리에 어떤 세상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폭풍은 결국 지나갈 것이고 인류 대부분은 생존할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많이 달라질지 모른다."(3월20일자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


주목할 것은 이런 변화를 암시하는 우리 주변의 단서들이다. 미국 인력관리협회(SHRM)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 대상 기업의 69%가 재택근무를 (전면 또는 일부) 도입했다. 이는 20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가 이런 기류에 기름을 끼얹을 것은 뻔하다. 과잉 연결과 과잉 소통의 피로감이 낳은 '언택트(비대면) 서비스'시장도 심상치 않다. 혼밥(혼자 하는 식사),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상징하는 '타인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방역 당국이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확장판이다. 그 연장선에서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이 열풍을 일으키고 음식 배달 주문량이 급증한다.


그러고 보면 재택근무나 언택트 서비스는 또 다른 연결을 위한 단절이다. 사람과 사람의 물리적 거리를 기술이 대체한다는 점에서. 사람과 사람의 멀어진 거리만큼 정보와 소통과 오락이 채워진다는 이유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또 다른 테러와 마주하고 있다.




이정일 부국장 겸 4차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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