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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130년 前 상업 포스터, 현대 예술작품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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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전·알폰스 무하전…벨 에포크 시대 풍요로운 파리 화가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1890년대 유럽에 자전거의 최전성기가 도래했다. 자전거 제작업체들의 홍보전은 치열했다.


영국 자전거회사 체인심슨은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 중이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에게 홍보 포스터를 의뢰했다. 로트레크는 1896년 영국 최고의 사이클 선수 지미 마이클과 프랑스 최고 사이클 선수 콩스탕 위레를 모델로 체임심슨의 포스터를 잇달아 그렸다. 두 포스터는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회 '툴루즈 로트렉전-물랭루즈의 작은 거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레를 모델로 한 포스터에는 체인심슨의 프랑스어 표기(La Chaine Simpson)가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화가 알폰스 무하(1860~1939)는 1897년 유럽에서 인기가 있던 미국 자전거회사 웨이벌리사이클의 광고 포스터를 그렸다. 1902년에는 프랑스에서 판매된 영국 자전거 페르펙타의 포스터도 그렸다. 무하의 자전거 포스터는 지난해 10월 개관한 서울 강남구 마이아트뮤지엄의 '알폰스 무하전'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상업용 포스터에 불과하던 로트레크와 무하의 그림은 오늘날 예술 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툴루즈 로트렉 '라 쉔 심슨', 85.1x121.9㎝, 1896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툴루즈 로트렉 '라 쉔 심슨', 85.1x121.9㎝, 1896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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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페르펙타 자전거', 102.2x152.6㎝, 1902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알폰스 무하 '페르펙타 자전거', 102.2x152.6㎝, 1902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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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는 1864년 프랑스 알비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이주해 살았다. 무하는 1860년 체코 이반치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7년 파리로 이주해 활동했다.


두 사람이 활동하던 때는 이른바 '벨 에포크' 시대였다.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의 벨 에포크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1871)이 끝나고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기를 일컫는다. 산업혁명 뒤 과학과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다. 자전거도 크랭크 체인, 공기압 타이어의 발명 등으로 계속 개량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현대식 자전거가 벨 에포크 시대에 만들어졌다.

로트레크와 무하가 그린 자전거 홍보 포스터들은 오늘날 두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화풍에서는 차이가 뚜렷하다. 로트레크는 자전거 체인을 세세하게 그려 자전거의 기능적 특성을 강조했다. 사이클 선수의 장딴지를 부각해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한편 무하의 그림은 얼핏 봐선 자전거 홍보 포스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페르펙타 사이클 포스터의 경우 자전거 바퀴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성이 자전거 헤더에 야릇하게 몸을 기대고 있을 뿐이다. 같은 자전거 포스터지만 홍보 전략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무하는 주로 아름다운 여성을 내세워 상품의 이미지를 팔았다. 그는 자전거뿐 아니라 술, 담배, 과자, 향수, 분유, 치약 등 다양한 상품의 포스터를 그렸다. 한결같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여신 같은 긴 머리의 여성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툴루즈 로트렉 '욕조에 물 채우는 여자(엘르 연작 中)', 40x52.5㎝, 1896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툴루즈 로트렉 '욕조에 물 채우는 여자(엘르 연작 中)', 40x52.5㎝, 1896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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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주, 라 굴뤼', 176x108㎝, 1891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주, 라 굴뤼', 176x108㎝, 1891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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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포스터-잔 아브릴', 124x91.5㎝, 1893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툴루즈 로트렉 '포스터-잔 아브릴', 124x91.5㎝, 1893년, 컬러 석판화 [사진= 메이드인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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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도 여성을 많이 그렸다. 다만 그가 화폭에 담은 여성은 파리 유흥가의 여인들이었다.


로트레크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되레 불행한 일이었다. 당시 귀족 가운데는 근친혼 탓에 유전적으로 기형이거나 허약한 이가 많았다. 로트레크의 부모도 이종사촌 간이었다. 로트레크는 유전적으로 허약했다. 14~15세 때 잇달아 두 다리가 부러지면서 키가 152㎝까지만 자랐다. 로트레크는 당시 귀족들의 놀이인 승마나 사냥을 즐길 수 없었다. 대신 그림에 몰두했다. 아버지는 로트레크를 싫어했지만 어머니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줬다.


귀족들과 어울리지 못한 로트레크는 유흥가 사람들과 어울렸다. 유흥가 여인들도 작고 볼품없는 로트레크에게 별다른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로트레크는 자유롭게 유흥가 여인들의 생활 공간 안에서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로트레크는 이들을 그리면서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찬 상류 사회를 조롱했다.


파리 유흥가는 풍요로운 벨 에포크의 유산이었다.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돼 유명한 '물랭루주'는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에펠탑이 세워진 1889년 몽마르트르에서 개점했다. 물랭루주는 개장 2년 뒤인 1891년 로트레크에게 홍보 포스터를 의뢰했다. 그가 그린 포스터 '물랭루주, 라 굴뤼'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로트레크는 일약 유명 화가로 떠올랐다. '라 굴뤼'는 루이즈 베버라는 물랭루주 무희의 예명이었다. 대식가라는 뜻이다. 라 굴뤼도 로트레크 덕에 일약 파리 유흥가의 유명 스타가 됐다. 로트레크는 잔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아리스티드 브뤼앙 등 당시 활동한 무희와 가수들을 그려 스타로 만들어줬다.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68.2x210.8㎝, 1894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알폰스 무하 '지스몽다', 68.2x210.8㎝, 1894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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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뿌리는 향수-로도', 145x95.8㎝, 1896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알폰스 무하 '뿌리는 향수-로도', 145x95.8㎝, 1896년 [사진= 마이아트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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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도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1844∼1923·Sarah Bernhardt)를 화폭에 담았다. 베르나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배우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로 유명한 '토스카'는 극작가 빅토리아 사르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토스카는 사르두가 베르나르를 위해 쓴 희곡이었다.


무하는 1895년 베르나르가 출연한 연극 '지스몽다(Gismonda)'의 포스터를 그려 명성을 얻는다. 베르나르는 이후 무하를 6년간 고용하며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 포스터를 그리게 했다.


무하가 상업적인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상업용 포스터로 돈을 번 무하는 1910년 고국 체코로 돌아와 슬라브 민족의 민족성을 고취시키는 '슬라브 서사시'라는 제목의 20개 연작 그림을 그렸다. 슬라브 서사시 중 가장 큰 그림이 810×610㎝, 가장 작은 그림이 480×405㎝에 달하는 대작이었다. 무하는 1928년에 슬라브 서사시 연작을 완성해 조국에 기증했다.


'알폰스 무하전'에서는 무하의 판화·유화·드로잉 등 오리지널 작품 230여점을 볼 수 있다. '툴루즈 로트렉전-물랭루즈의 작은 거인'에서는 로트레크가 그린 포스터 31점, 잡지에 기고한 풍자화 등 150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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