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한때 최고 항공사였던 '팬암'은 왜 망했을까?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히든業스토리]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에 성공한 팬암
보잉 747 항공기 도입·비즈니스 서비스 운영하며 독보적 1위 항공사로
유가 폭등·사망사고·테러 등으로 팬암 이미지 추락…1991년 결국 파산 결정

한때 최고 항공사였던 '팬암'은 왜 망했을까?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팬암(Pan Am)'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은 한때 세계 정상에 올랐던 항공사다. 세계 최초로 지구 일주에 성공한 항공사이자 항공사에서 가장 처음 보잉747 모델을 여객기에 도입한 항공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상징적인 기업이다. 현재 항공사 운영 시스템과 항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랬던 팬암이 6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1991년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미지 - Pan Am Historical Foundation]

[이미지 - Pan Am Historical Foundation]

원본보기 아이콘


팬암, 세계 항공 산업을 지배하다

팬암의 역사는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후안 트리페(Juan Trippe)가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서 국제 항공 우편 사업을 하면서 팬암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1929년 1월 처음으로 승객을 항공기에 태우는 여객 비행 사업으로 확장했다.

미국 국내선보다는 국제 노선에 더 집중했다. 1930년대 미국과 남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항로에 이어 환태평양 노선, 환대서양 노선 비행까지 성공하면서 인류 최초로 '지구 일주'에 성공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팬암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시 팬암 항공기를 이용해 군사들은 물론 군 관련 물자와 외교관 등의 수송을 도왔다.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계 최초로 해외 순방에 나설 때 이용했던 비행기 역시 팬암이다. 종전 이후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팬암은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거듭나 있었다. 1947년 미국과 영국, 터키, 인도, 태국, 중국, 일본 등으로 이어지는 '세계 일주' 노선에 대한 독점권을 따냈다.

[사진- Pan Am Historical Foundation]

[사진- Pan Am Historical Foundation]

원본보기 아이콘


1950년대부터는 사실상 팬암이 전 세계 항공 산업을 지배했다. 최초로 '클리퍼(Clipper)'하는 비즈니스석을 선보이며 좌석에 등급을 매겼고, 1954년에는 처음으로 보잉 707 항공기를 도입해 제트엔진 항공기 시대를 열었다. 특히 1970년에는 '점보제트기'로 불리는 '보잉747'을 업계 최초로 여객기로 사용했다. 보통 200명대 정원이었던 보잉707, 보잉727 등과 달리 보잉747은 524명 정원으로 대형 항공기였다. 이후에도 에어버스의 A300, A310 등을 도입하면서 대형 항공기 운영을 본격화했다.


높아진 유지비에 치솟은 유가…재정 위기를 맞은 팬암

그런데 문제는 대형 항공기 운영으로 인한 유지비 증가였다. 흑자의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배럴당 2.9달러였던 두바이유는 11.6달러까지 4배가량 폭등했고, 1978년 이란혁명으로 국제유가는 40달러까지 상승했다. 막대한 유지비에 유가까지 치솟자 팬암을 비롯한 항공 업계가 휘청였다.


이런 상황에서 팬암은 되레 투자에 나섰다. 국제노선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였으나 다소 취약했던 국내선 보완에 나선 것. 당시 중견 항공사였던 '내셔널 항공(National Airlines)'을 무리한 가격에 인수했다. 인수금도 문제였지만 팬암과 내셔널 항공은 기종은 물론 운행 방식까지도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셔널 항공으로 벌어들인 수익보다 유지비와 인건비가 더 나가는 상황이었고, 재정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1981년에는 당시 뉴욕에서 가장 큰 빌딩을 자랑했던 팬암의 본사(現 메트라이프)마저 매각했다.

[이미지 = 연합뉴스]

[이미지 =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각종 사고와 테러…결국 파산까지

위기는 동시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1977년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공항에서 항공 사고가 발생했다. 착륙하던 팬암 항공기와 이륙하던 네덜란드 KLM 항공기가 충돌했다. 583명이 사망하면서 지금까지도 항공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KLM 항공 측의 실수로 밝혀지긴 했으나 이 사건 이후에도 내셔널 항공이 천재지변으로 153명의 사망 사고를 내는 등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팬암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하락했다.


팬암은 두 사고를 겪으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본사 빌딩 매각을 시작으로 1985년부터는 태평양 노선을 유나이티드 항공에 매각하면서 노선마저 다른 항공사에 넘겨줬다. 다음 해에는 델타 항공에 대서양 노선을 매각해 1986년 팬암은 결국 국내선과 남미 노선만 남게 된다.


그런데 팬암은 이마저도 운영할 수 없어졌다. 규모는 점차 작아졌지만, 팬암은 여전히 '미국의 상징'으로 불렸고, 반미 테러리스트들은 팬암을 표적으로 삼았다. 1986년 파키스탄에서 테러를 당한 이후 1988년 탑승자 259명과 마을 주민 11명이 희생된 '로커비 테러(Lockerbie bombing)'를 당하게 된다. 서독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공항을 이륙해 런던 히드로 공항과 뉴욕 존 F.케네디 공항을 경유해 디트로이트 메트로 공항에 착륙 예정이었던 팬암 103편 항공이 스코틀랜드 남부 로커비 마을 상공에서 폭파했다. 리비아 정보요원이 카세트 녹음기에 폭탄을 장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암은 이 사건이 결정타가 돼 1991년 12월 파산을 결정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