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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게 싸움 구경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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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게 불 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다. 무대 위에서 불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는 싸움 구경이 왜 재미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싸우는 이들의 체급도 다양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으로 시작해 젊은 연인들의 싸움, 친구 사이인 젊은 여성들끼리의 싸움 그리고 자기자신과의 싸움까지. 거듭되는 싸움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은 결국 싸움의 연속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선택하는 것도 치열한 자기 내면의 싸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끝없는 싸움의 연속인 삶에서 때로는 덜컥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의외의 묘수가 되면서 꼬였던 삶의 실타래를 풀어줄 수 있음을 이 연극은 보여준다. 두 시간 내내 아무 생각 없이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제대로 보여주며, 따라서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또 그 이상의 묘한 여운을 남기는 연극이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공연 장면. 왼쪽부터 윤석현, 진선규.   [사진=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공연 장면. 왼쪽부터 윤석현, 진선규. [사진=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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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엄마를 맡은 배우들이 한 인물이지만 사실상 두 가지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점이 이 연극의 묘미 중 하나다. 우리도 삶 속에서 각자 상황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에서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핏대도 세우고 난폭한 모습을 보이지만, 재혼을 결심한 여성 앞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넘쳐나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과 사별한 엄마는 재혼을 고민하는 남자 앞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온갖 내숭을 떨지만 20년지기 친구들 앞에서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또 다른 자아를 보여준다.


딸의 친구로 등장했다가 엄마의 친구로도 등장하는 진짜 1인 2역을 맡은 두 여배우들의 연기도 감칠맛 난다. 이 연극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노래방 주인의 역할도 흥미롭다. 그는 극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극은 노래방 주인이 노래방 바닥을 밀대로 닦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는 밀대를 집어던지며 관객에게 연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바닥을 물기로 적셔놔야 관객들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처럼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아무도 이해 못 하는데 혼자 예술 한답시는 사람들이 자신은 제일 싫다며 연출에 대한 경멸을 쏟아내고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공연 장면. 왼쪽부터 한수림, 정선아, 이지해, 정연.   [사진=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연극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공연 장면. 왼쪽부터 한수림, 정선아, 이지해, 정연. [사진=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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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래방 주인은 극 중 역할을 소화하다가도 극 중 역할에서 벗어나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 역할을 한다. 노래방 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싸움을 지켜보며 그 싸움이 끝날 때마다 관객에게 감상평도 얘기하고 훈수도 둔다. 그 모습이 노래방이라는 공간 속에 갇힌 인간 군상을 바라보는 신의 존재 같은 느낌도 준다.


이런 노래방 주인의 판타지적인 면모 때문에 노래방 화장실을 놀이터로 표현한 연출 방식도 묘한 설득력을 준다. 배우들은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화장실에 간다며 무대 뒤편의 놀이터로 향한다. 시소, 구름다리, 그네를 순서대로 타고 놀며 속에 쌓여있던 뭔가를 풀어내고 온다.


노래방 주인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밤에 놀이터를 가 보면 아이들보다 혼자 고민에 빠진 어른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느냐고?"


배우들이 각자 맡은 역할의 감정을 한껏 담아낸 노래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연극의 매력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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