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년기획 - 세대공존, 함께 만드는 사회]
<6>유튜브 세상에 사는 신인류
거창하고 진지한 내용 사절
편안한 콘텐츠 소비 심리
더 나은 여가를 위한 탐색
낭비라고만 할 수는 없어
취미와 직업을 헷갈리진 않아
합리적인 '카르페디엠' 추구
선정적인 썸네일·제목의 유혹
뻔하지만 해답은 사회적 합의
[아시아경제 이정윤 기자] "요즘 애들은 유튜브가 있어서 TV는 잘 안 봐요."
"퇴근하고 나서 유튜브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에요."
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본다. 닐슨코리아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밀레니얼 세대 남성과 여성의 유튜브 점유율은 각각 85.8%, 90.8%를 기록했다. 그보다 어린 Z세대는 더 높다. 남녀 모두 93% 이상이다. 반면 이들과 한지붕에서 부모 관계로 지내고 있는 X세대와 베이붐세대는 70% 후반에서 80% 초중반 수준이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왜 유튜브에 '더' 열광할까. 그들이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여서일까. 물론 글과 사진에 익숙한 기성세대보다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통칭)는 동영상에 더 친근하며 쉽게 반응한다. 또 스마트폰을 편하고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특성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 때문에만 젊은이들이 유튜브에 몰입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는 그들을 몰입시킬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 무언가를 파악한다면 그들의 감성과 니즈는 물론 그들이 처한 상황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상과 평범함에 매혹되다"
젊은이들의 선택을 받는 유튜브 콘텐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이런 것들이 등장한다.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이 나와 일상을 보여주는 콘텐츠, 먹방이나 브이로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직장인 토머스(30ㆍ이하 별칭)는 매일 2시간 넘게 유튜브를 본다. 그가 자주 보는 콘텐츠는 유튜버가 먹방을 하면서 일상을 이야기하고 시청자 고민을 들어주는 내용이다. 토머스는 "내가 평소 겪을 법한 내용을 가지고 대화하는 콘텐츠라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소소한 일상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를 주로 찾아본다"고 했다. 김선생(28)도 무명 개그맨들이 출연해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몰래카메라를 담은 콘텐츠를 자주 본다고 한다.
화려한 연예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잘 짜여진 대본도 없어 허술하기 그지없다. 어른들 입장에선 그렇다. 그런데도 왜 이런 것들이 재미있다는 걸까.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노멀크러시(normal crush)라는 개념을 통해 이런 차이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노멀크러시'는 평범함을 뜻하는 '노멀'과 반하다의 의미를 가진 '크러시'의 합성어로 평범한 것에 반하다, 일상적인 것을 추구한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임 교수는 "유튜브에선 보통 사람, 나랑 비슷한 사람의 콘텐츠를 볼 수 있고 이는 가볍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일하고 경쟁하는 게 힘에 부치니 휴식시간에라도 편안한 일상과 맞닿아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길 원하는 심리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시대 청춘들이 유튜브를 탐닉하는 데는 슬픈 자화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각박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유튜브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거창한 내용을 담은 진지한 콘텐츠는 환영받지 못한다. '노오력'과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으면 그만이다. 유튜브는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친구나 이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서 소소한 재미를 주는 동영상. 젊은이들은 유튜브를 보면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낀다.
"정보를 얻긴 한다. 물론 관심 있는 것만"
어른들은 생각 없이 유튜브만 보는 아랫것들을 몰아세운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그러나 요즘 애들도 그렇게 분별없지는 않다. 유튜브는 정보 탐색의 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얻고자 하는 정보는 기성세대의 성에 차지 않는다. 여가와 취미에만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볼 시간에 외국어나 자격증 공부를 해 미래를 대비하라는 소리는 잔소리로 치부될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윗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여전히 그들에겐 각박한 현실에서 받아야 했던 응어리를 풀어낼 무엇이 필요하다. 그 무엇은 취미생활과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자유의 시간을 한층 더 자유롭게 보내는 것이다.
중견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하는 화곡르보론(32)은 "농구와 축구 그리고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학 관련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면서 "이들은 깊이 있는 내용을 알기 쉽게 곱씹어준다"고 했다. 닭가슴살샐러드(34)도 "평소 요리에 관심이 있어 백종원의 유튜브 동영상을 자주 시청한다"며 "영상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직접 요리를 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유튜브를 보는 이유는 업무 능력 향상이나 자기계발과는 거리가 멀다. 이 두 젊은이의 말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한 단어는 바로 '관심'이다.
"유튜브는 좋아. 그런데 유튜버는 되고 싶지 않아"
요즘 아이들의 희망직업 중 유튜버가 수위권에 올랐다는 뉴스가 있었다. 유튜브를 끼고 사는 만큼 정말 MZ세대는 유튜버를 동경하고 있을까. 대학생 명량청년(22)은 "유튜버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리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면서도 "동영상 편집이나 자막을 입히는 것처럼 수고스러운 일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콘텐츠를 개발할 자신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유튜브도 이미 레드오션 아닌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만큼 유튜브 성공도 요즘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모든 MZ세대가 '취미'와 '직업'을 헷갈려하는 건 아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는 옛날로 따지면 '스타'나 '영웅'과 같은 존재다. 과거엔 자신이 영웅으로 삼은 인물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런 동경의 대상이 한두 명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었다. '너의 롤모델은 누구니'는 입사 면접시험의 단골 질문이기도 하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의 영웅은 이순신과 세종대왕, 김구와 스티브 잡스에서 유명 유튜버로 바뀔 법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굳이 영웅이 돼야 해?', '카르페디엠(현재를 즐겨라)'이라는 말은 흔하게 쓰인다. 현실적인 MZ세대는 못 먹을 감을 쳐다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계층 사다리는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니까.' 유튜버로서 성공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괜한 힘을 쏟지 않는다. 유튜브 전성시대의 본질을 분석해 MZ세대의 특징과 가치관을 파악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작업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냥 노는 걸 가지고 왜 저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혹시 진지충(매사에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세요?'라는 소리나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유튜브 사용설명서는?"
유튜브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에게 가장 알맞은 놀이기구다. 유튜브가 건전한 놀이터가 되려면 지겹도록 지적돼온 가짜뉴스ㆍ확증편향ㆍ선정성 같은 놈들을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젊은이를 현혹시키는 시한폭탄이 될지 모른다. 직장인 후뢰시맨(29)도 이런 걱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튜브를 하다보면 근거 없는 이야기와 선정적 영상으로 유혹하는 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면서 "돈이나 조회수 때문에 이런 영상을 만드는 것 같은데 막상 썸네일과 제목을 보면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다"고 했다. 박종민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유튜브의 어두운 측면에 빠져들기 쉽다"고 설명한다. 사회나 정치적 경험이 없다보니 쉽게 영향을 받고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해답은 진부하고 따분하다. 그럼에도 뻔함 속에 정답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 그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근본 문제가 해소된다. 박 교수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합의와 윤리, 문화운동을 통해 현재 유튜브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이나 규제로 강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 같은 개인의 권리 문제와 충돌할 수 있어 더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제한할 것인가 하는 기준도 정립하기 어렵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는 뺏을 수 없어요. 유튜브를 사용할 때 더 성숙해지는 형태로 노력해야 해요." 숙제 하나가 던져졌다.
모든 현상은 사회적 의미를 내포한다. 유튜브에 빠져사는 젊은이. 손가락질하고 훈계할 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내밀한 곳을 살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을 이해할 지점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고 동시에 확실한 건, 유튜브에 빠져사는 MZ세대는 자신들의 놀이터가 엉망으로 변질돼 가는 걸 그대로 놔둘 정도로 한심하진 않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언제든 유튜브를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것, 정도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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