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효원 기자] 김재섭 에이프로젠 회장이 옵션 거래로 지배력을 강화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4월23일 지베이스는 에이프로젠에 에이프로젠KIC 14회차 신주인수권부사채(BW) 475억원어치를 살 수 있는 콜옵션을 284억9600만원에 매각했다.
에이프로젠KIC 14회차 BW는 2017년 12월21일 1000억원 규모로 발행된 사채다. 신주인수 행사가액은 2172원이다.
발행 당시 14회차 BW에는 지베이스나 지베이스가 지정하는 제3자가 원할 때 사채원금의 50%(500억원)를 살 수 있는 콜옵션이 설정됐다. 이중 475억원 BW에 대한 콜옵션을 지베이스가 에이프로젠으로 넘긴 것이다.
콜옵션 가격은 콜옵션 거래 전날인 지난해 4월22일 에이프로젠KIC의 종가 3475원에서 신주인수 행사가격인 2172원을 뺀 1303원으로 결정했다.
에이프로젠KIC 주가는 지난해 1월 초부터 3월 말까지 3000원 안팎에서 움직이다 옵션거래 직전인 4월4일과 5일 이틀간 급등하면서 주가가 일시적으로 4000원을 돌파했다.
통상 일반 회사는 자금을 조달할 때 주가 변동성을 고려해 과거 일정 기간의 평균 가격을 주당 가치로 산정한다. 하지만 에이프로젠은 변동성이 커진 시기에 옵션거래 전날 단 하루의 종가를 옵션 가격에 적용한 것이다.
에이프로젠은 이렇게 매수한 콜옵션 중 일부를 행사해 402억원 규모의 14회차 BW를 인수했다. 또 곧바로 신주인수권리를 행사해 에이프로젠KIC 주식 1850만9287주(13.26%)를 취득했다. 행사가액과 옵션가치를 더하면 주당 3475원, 총 643억원에 에이프로젠KIC 주식을 얻게 된 셈이다.
이후 에이프로젠KIC의 주가는 4개월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신주인수권 행사에 따른 주식 수 증가가 주주가치 희석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에는 2015년 1월 이후 최저가인 1710원까지 빠졌다. 지난 14일 종가 기준 에이프로젠KIC의 주가는 3020원으로 여전히 BW로 인수한 가격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신주 인수에 따른 주식 오버행(대량 매각 대기 물량) 이슈나 주가 하락 리스크를 지베이스 대신 에이프로젠이 가져간 셈이다.
주가 흐름과 관계없이 에이프로젠은 에이프로젠KIC의 BW를 추가 인수하고 주식으로 바꿨다. 지난해 6월 에이프로젠은 BW 26억원어치를 행사해 119만7053주를 얻었다. 당시 에이프로젠KIC의 주가는 3100원이었다. 지난해 8월 BW 9억원을 주식으로 받았을 때 주가는 2275원이었다. 합병도 검토하고 있어서 에이프로젠KIC 지분을 확대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을 것으로 보인다.
지베이스는 김재섭 에이프로젠 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개인회사로, 에이프로젠(31.35%)과 에이프로젠KIC(20.48%)의 최대주주다. 에이프로젠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법인으로, 계열사의 자금 거래와 같은 중요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김재섭 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지베이스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계열사 에이프로젠을 이용해 이 같은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에이프로젠 관계자는 “향후 주가가 오를지, 하락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에이프로젠KIC BW 콜옵션 가치를 산정할 때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며 “에이프로젠의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장효원 기자 specialjh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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