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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범죄사실 사전공개, 공정재판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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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범죄사실 사전공개, 공정재판 악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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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형사재판에서의 방어권과 무죄추정ㆍ명예ㆍ인격권 등을 고려할 때, 공판절차의 개시 이전에 공소장의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타당하다. 미국의 경우 유죄를 예단케 하는 광범위한 언론보도는 적법절차 위반이어서 위헌이라는 판례가 많이 있다. 독일형법은 공소장을 공판개시전에 공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영국ㆍ미국 등도 공개금지를 위반하면 법정모욕죄로 벌한다. 특히 배심제와 국민참여재판이 정착된 나라에서는 공판이 시작되어 배심원단이 구성되기 전까지를 중요하게 본다. 범죄의 종류와 무관하게 공정한 절차는 보장돼야 한다.


우리도 2008년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으므로 공판개시 전 공소장 공개는 자제돼야 한다. 그러나 오랜 관행과 국민의 알권리라는 목소리에 떠밀려 심지어 피의사실공표죄가 있음에도 검찰발 '실시간 범죄보도'가 흘러 넘치면서 정식공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재판은 끝나있는 경우가 많다. 검찰의 주장만을 믿고 피고인의 반론에는 귀막은 채 유죄를 단정하여 피고인을 비난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범죄사실의 사전 공개는 공정한 재판에 악영향을 미치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폐악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를 갖는 한 당사자일 수 있고, 권한축소를 원치 않으며 검찰개혁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검찰의 주장이 불공정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큰 진전이다.


혹자는 법무부 장관이 국회관련법상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했으므로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회법에 우선하는 헌법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할 뿐 아니라, 국회법은 계속 중인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건심의를 명분으로 재판중인 사건의 공소장을 입수하여 언론에 공개하고 이를 통해 유죄의 심증을 유포함으로써 피고인을 비난하려는 시도가 반복돼 왔다. 이러한 국회의원의 부당한 요구와 언행이 오히려 직권남용이 아닌가 싶다.


혹자는 미국도 공소장을 공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방검사에 적용되는 사법매뉴얼을 보면, 검사 등은 공정한 재판을 위협할 수 있으면 사건내용을 공개할 수 없고, 이러한 판단은 법무부에서 행한다. 의회 요구에 대하여는 더 엄격한 요건이 적용된다. 뿐만 아니라 공소장 자체가 우리의 공소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대부분 공소장은 10쪽 정도이고, 사실관계가 간략이 기술되어 있다. 공소장의 내용은 '주장'이며 유죄가 확정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주의문구도 있다. 이에 반해 한 언론이 공개한 이번 사건의 공소장은 70쪽이 넘는 분량에 세세한 공소사실을 단정적 표현으로 꾸짖고 있다. 무죄추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고 심지어 피고인이나 참고인의 진술내용도 그대로 인용돼 있다. 이러한 사항은 모두 공판정에서 반대신문을 거쳐 법관과 배심원이 확정해야 할 중요한 범죄사실들이다. 공소장이라는 명칭이 같다고 내용이 같은 것이 아니다. 미국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2005년 노무현정부 때 공소장을 공개했다고 하지만, 당시는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기 이전이었고,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당시에는 수사기관이나 법무부가 아니라 언론이 취재하여 숨겨진 진실을 파헤쳤기에 법무부의 공개와는 주체가 다르다. 언론의 자유를 고려하여 우리 피의사실공표죄도 수사기관이 대상이지 언론은 대상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는 공판이 시작되면 자연히 보장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번 사건부터냐고 추궁한다. 하지만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과잉수사와 무분별한 언론보도를 거치면서 10월 법무부훈령이 제개정되고, 12월부터 시행됐음을 상기해야 한다. 오히려 앞으로 다른 사건에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1953년 신설된 피의사실공표죄도 변화된 제도와 의식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이 기회에 정비해야 한다.


한상훈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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