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서울시 공동기획 [워라밸2.0 시대로]
'워라밸 강소기업' 일과 삶 이렇게 달라졌어요-프로토파이 개발사 '스튜디오씨드코리아'
휴가·재택 등 출근 상태 결재 없이 업무용 메신저로 알리면 OK
33명 직원들 각자 업무생산성 따라 근무, 육아휴직도 자유로워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오전 9시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스튜디오씨드코리아의 업무용 메신저 '슬랙'에 오늘의 출근 상태를 알리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집에서 근무하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당일 연차를 쓰겠다고 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일상인 듯 자연스럽다. 아이가 아파서 못 나오겠다고 말한 직원의 글 아래엔 빨리 낫기를 바란다는 댓글도 달렸다.
6년 차 스타트업 스튜디오씨드코리아에서 자율 출퇴근은 필수, 무제한 휴가 사용은 선택이다. 직원 모두 전 세계 어디에서든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한다. 휴가는 보고나 일수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결재도 따로 받지 않는다. 본사도 공유 사무실이다. 24인실을 통째로 빌렸다.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직원은 총 33명 중 10명 내외다. 네덜란드·이탈리아·중국 국적의 외국인도 함께 일을 하며 미국 시애틀과 대전·춘천·남양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다.
스튜디오씨드코리아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프로토타이핑 툴을 제공하는 IT업체다. 디자이너가 개발자 도움 없이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설계하고 프로토타이핑(시제품화)까지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00개국, 150개 정도 고객사가 사용 중이다.
이 회사는 직원 20명가량이 개발자다. 업무 특성상 혼자 일하면 되는 종류가 많아 지금과 같은 제도 도입이 가능했다. 팀별 목표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기만 한다면 본인이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다. 요청에 따라 집 근처에 있는 공유 사무실을 대여해주기도 한다. 2017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 프레도 탄(30)씨는 "고향인 네덜란드에 가서도 마음이 편한 게, 일하면서 가족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에 근무하다 보니 고향에 한 번 다녀오기도 힘든데 제한 없이 휴가를 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송도에 있는 여자친구 집 근처에서 출근해 일을 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달 동안 근무하기도 했다"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 대표이사 또한 자율 출퇴근제를 활용한다. 1년의 3분의 1을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데다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김 대표는 틈틈이 재택근무를 한다. 그는 "회사는 직원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격려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며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움직이게 돼있다"고 전했다. 사람마다 능률이 잘 오르는 시간과 장소가 다르다는 판단에 이러한 문화를 조성하게 됐다고 한다. 김 대표는 "신뢰와 책임ㆍ소통이 자율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근간"이라면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만족으로 선순환이 돼 근속을 더 유도한다"고 강조했다.
스튜디오씨드코리아는 신규 채용을 할 때는 필요한 수만큼 상시적으로 채용한다. 팀으로 수행하는 작업들이 많기 때문에 인원이 급격히 증가하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채용 인터뷰는 무려 5시간이 걸린다. 경영진은 물론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과도 이야기를 나눈다. 합격 여부는 당일 바로 알 수 있다. 면접자가 결과를 기다리느라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한다는 취지다.
김수 대표 "사람마다 능률이 잘 오르는 시간·장소 다르니까"
자율적인 근무 문화 유지 비결은…직원들 간 신뢰·책임·소통
육아휴직도 자유롭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여성 직원은 입사 당시 결혼했는데, 워라밸 문화 덕분에 아이 계획을 앞당겼다고 전했다. 서울형 강소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육아휴직 대체인력과 관련한 지원도 서울시로부터 받았다. 송영호 경영지원 팀장은 "직원들 평균 연령이 33세로 워라밸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각자 업무 생산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오랜 기간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워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또 팀 목표는 명시돼있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체크 리스트일 뿐 별도의 개별 업무 평가도 진행하지 않는다. 김 대표는 "저부터 사원ㆍ직원이란 말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대표는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직원들을 제어하려고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입사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직원도 자율 출퇴근과 제한 없는 휴가 사용이 가능하다. 지난 1월 입사한 박상진(29)씨는 "자유롭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무 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르다 보니 직원들 간 얼굴을 잘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친해지길 바라'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무작위로 2~3명 매칭을 통해 식사하는 시간을 지원한다. 또 스튜디오씨드코리아에선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은 화상 회의를 진행한다. 모든 직원들이 모이는 자리로 업무 관련 얘기들을 나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운용하고 있는 각종 제도들은 '재정'의 문제가 아닌 '의사결정'의 문제로 생각한다"며 "직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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