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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치킨·빵·고추장까지 노렸다…K브랜드 집어 삼키는 중국 상표브로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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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표만 모아 '상표 장사'…K브랜드 1100여개 독점
중국 진출 가로 막아…법정 다툼 수천만원 비용 소요
'교춘' 제재한 교촌치킨…'호찬들' 잡아낸 CJ '해찬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bnc치킨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bnc치킨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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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기 전의 bhc치킨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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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중국 진출을 앞두고 시장 조사를 해보니 이미 우리 브랜드의 상표가 무더기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상표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수천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돼 사실상 중국 진출을 포기했죠. 중국 상표 브로커가 기업에 접촉해와 돈을 요구하며 상표권을 찾아가라고 하는데, 선점상표의 한자표기가 달라 승소가 어렵다고 판단한 이들은 요구한 합의금을 주고 상표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외식업체 임원 A씨


치킨, 빵, 고추장 등 국내 식품·외식업체의 제품 브랜드가 중국인 상표 브로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중국 진출을 앞두고 상표를 출원·등록하려고 보면 이미 제품과 브랜드를 따라 한 상표권이 무더기로 등록돼 사업 전개에 차질을 빚고 있다. 다양한 상품 분류로 브랜드를 먼저 출원·등록해 시장 진출을 방해하고 높은 합의금과 사용료를 요구하는 등 지속적인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bhc·CJ·오뚜기까지 먹잇감으로 상표 등록 추진= 8일 중국 상표국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인 상표 브로커 K씨는 'BNC CHICKEN' 상표를 등록했다. 국내 2위 치킨 프랜차이즈 bhc치킨의 중국 사업을 방해할 목적에서다. K씨는 음식료품을 제공하는 서비스업 관련 상표를 등록했다. 현재 bhc치킨이 로고를 바꿨지만 당시 로고와 비교해보면 영문자 'n'과 'h'라는 차이가 있을 뿐 얼핏 보면 두 상표가 흡사해 보인다. bnc치킨이 중국에서 bhc치킨인 것 마냥 '짝퉁 영업'을 하게 되면 bhc치킨은 원치 않는 분쟁을 할 수도 있다. 앞서 설빙은 중국의 '짝퉁 설빙'에 상표권을 도용당했지만, 오히려 가짜가 진짜를 신고해 법적 분쟁도 겪어야 했고 결과는 패소, 중국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다만 bhc치킨 관계자는 이에 대해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bhc치킨 관계자는 "현재 중국 한자로 상표권을 보유한 상태이고, bnc처럼 유사브랜드가 생겨도 고객들이 충분히 판단할 수 있기에 중국 진출 시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K씨는 국내 수많은 식품·외식 기업들의 상표권을 갖고 있다. K씨가 상표 출원한 개수만 400개에 달하고 이 중 100개는 등록까지 마친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진출 가능성이 높거나, 활발하게 사업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상표를 무더기로 선점한 것. 특히 K씨가 노린 업체 중에선 식품·외식 기업들이 많다. K씨는 BHC(bhc치킨, 43류) 이외에도 다날(달콤커피, 40류), 교촌에프앤비(교촌치킨, 40류), 지앤푸드(굽네치킨, 40류), 엉터리(엉터리생고기, 43류), 행복한구이세상(연타발, 43류) 등에 이어 대기업 CJ제일제당(해찬들, 31류)과 오뚜기(오뚜기, 31류), CJ푸드빌(뚜레쥬르, 40류), 하림(하림, 29류), 풀무원(풀무원, 30류), 샘표(샘표, 31류) 등의 브랜드까지 먹잇감으로 골랐다.


한글 브랜드를 그대로 상표 출원한 하림과 풀무원의 상품 분류는 29류(냉동, 건조 및 조리된 과일 및 채소, 유제품, 달걀 등), 30류(커피, 차, 빵, 페이스트리 및 과자. 식초, 소스 등)다. 엉터리생고기, 연타발 등의 외식 브랜드는 43류로 출원했다.

문제는 대놓고 '눈뜨고 코베이는' 상황에 직면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일수록 대응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 진출을 위해 시장 조사에 들어갈 때 뒤늦게 상표 등록을 파악하거나 정부(특허청)가 파악한 후 통보하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풀무원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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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외국 브랜드라도 누군가 중국 안에서 상표 출원만 먼저 하면 그 사람이 우선권을 받고, 상표권을 되찾기 위한 과정은 힘들다. 상표권 등록 이전 단계에서는 중국 당국에 상표 이의신청을 하고, 등록 이후 단계에서는 기등록 상표의 효력을 없애는 무효선고를 청구해야 한다. 과정을 밟으려면 최소 수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승소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


외식업체 관계자는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중국 상표 브로커로부터 연락이 왔고 그즈음 중국에서 상표 출원이 이루어졌다"며 "상표를 되찾기 위해 법적 다툼을 벌였는데 소용이 없어 결국 다른 상표와 로고를 갖고 중국 진출을 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한 변리사는 "국내 상표들이 중국에 등록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 상표법상 규정에 그런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이의 제기를 해도 이기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오뚜기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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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찬들·교춘 막아낸 CJ와 교촌치킨= 자체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상표를 지킨 경우도 있다. CJ제일제당은 K씨가 2015년 '해찬들'로 상표 출원한 것을 파악하고, 이의 신청에 들어갔다. 이후 되찾아 아예 K씨가 사용한 한자 '호찬들'까지 등록해 짝퉁 상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부가 인지하기 전에 미리 법무팀에서 파악하고 대응했던 것. CJ제일제당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꾸준한 시장 조사를 통해 일찍 파악할 수 있어 대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CJ는 규모가 있고, 정부가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 대응할 수 있지만 웬만해서는 파악하기도 힘들고 정부도 뒤늦게 알려주는 상황"이라며 "법률적인 구제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 결국 업체 스스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오뚜기 상표 등록은 31류(미가공 농업, 수산양식, 원예 및 임업 생산물, 과일, 채소, 동물용 사료 및 음료, 맥아 등)이기 때문에 중국 사업에 차질은 없다. 오뚜기 관계자는 "중국에 라면 위주로 수출을 하고 있으며 관련해서는 모두 선등록을 해 상표를 지켰다"면서 "31류에는 해당되는 제품은 없어 중국 사업에는 차질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오뚜기는 31류에 해당하는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중국 수출은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뚜레쥬르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상표 등록한 뚜레쥬르 이미지.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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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레쥬르와 교촌치킨의 상표 등록도 재료처리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각 업체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지장은 없다. 특히 교촌치킨의 경우 중국에서 '교춘치킨'으로 짝퉁이 성행한 것과 관련해서도 짝퉁 간판을 내리는 조치까지 이끌어냈다. 교촌치킨 관계자는 "상표권의 중요성을 알고 일찌감치 130여개국에 상표 등록을 진행해 중국 진출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09년 5월에 중국에 진출한 교촌치킨은 현재 매장 4개를 안정적으로 운영중이다.


한류를 틈타 K브랜드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상표만 모아 등록한 뒤 '상표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중국 상표 브로커가 피해를 입힌 한국 상표는 2016년 406건에서 2017년 588건, 2018년 1142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700개가량의 한국 상표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된다. 상표 브로커는 한국 기업의 상표권을 무단으로 선점한 건이 3건 이상인 이들로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상표권의 영문·중문 상표를 선점해 두는 방식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주로 활동하는 20명 남짓의 상표 브로커들이 1100여 개 상표권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해찬들 브랜드의 상표를 출원한 사실을 파악한 CJ제일제당은 이의신청 통해 승소한 뒤 아예 호찬들까지 상표 등록을 마쳤다. 사진은 CJ제일제당이 중국 상표국에 출원 등록한 호찬들 상표. 이선애 기자 lsa@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해찬들 브랜드의 상표를 출원한 사실을 파악한 CJ제일제당은 이의신청 통해 승소한 뒤 아예 호찬들까지 상표 등록을 마쳤다. 사진은 CJ제일제당이 중국 상표국에 출원 등록한 호찬들 상표.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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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디자인권 확보해두는 것이 최상책= 전문가들은 상표권 분쟁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상품에 대한 권리를 상표권이나 디자인권으로 확보해 두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지적한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 브로커나 현지 바이어에 의한 상표권 무단 선점 문제 등을 막기 위해서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긴요하다"며 "한국 기업의 상표 보호를 위해 해외 출원비용을 지원하고 상표 무단선점 피해가 발생했을 때 분쟁 대응 과정에 지원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좋은 소식은 전해지고 있다. 최근 해외 상표 브로커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지재권 분쟁 공동대응 지원사업'을 통해 53개 기업이 중국에서 브랜드 이름을 되찾았다.


승소한 53개 기업은 중국 상표 브로커에게 피해를 입은 프랜차이즈·인형·의류·화장품 등 4개 업종의 국내 중소기업. 이들은 중국 상표 브로커가 다량 선점한 상표들을 심층분석한 뒤 공동탄원서 제출, 병합심리 등의 방법으로 브로커의 악의성을 입증하는데 주력, 53건의 상표권 분쟁에서 모두 승소했다.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국내 식품업체 CJ제일제당의 해찬들 브랜드의 상표를 출원한 사진. 이선애 기자 lsa@

중국인 상표 브로커가 국내 식품업체 CJ제일제당의 해찬들 브랜드의 상표를 출원한 사진. 이선애 기자 l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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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은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 인지도가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낮아 브로커가 선점한 상표를 무효시키기 어려웠지만, 중국 상표당국의 브로커 근절 정책을 활용해 이번 결과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에 승소한 한 외식업체 측은 "선점상표의 한자표기가 달라 승소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 포기하려고 했지만, 비슷한 피해를 입은 기업들과 공동으로 대응하며 상표 브로커의 복제·표절에 대한 고의성을 명확하게 입증해 승소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허청은 현지 상표브로커의 불공정 사용을 막기 위해 기업의 이미지 발음, 중문 의미와 기업 이미지 부합 여부, 등록 가능성 등을 검토해 중문 브랜드 네이밍을 지원하고 있다. 피해기업에게는 해외 출원비용 지원사업 등을 통해 K브랜드 상표 출원을 유도하고 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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