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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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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선임기자] 어느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 땅에 불시착한 남한의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북한군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극비 러브스토리. tvN 토일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극본 박지은ㆍ연출 이정효)의 내용이다. 지금까지 주된 극중 배경은 휴전선 인근 북한군 사택마을과 평양 등지였다.


이런 '사랑의 불시착'이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보수정당인 기독자유당은 지난 10일 성명서에서 "북한은 단 한 번도 우리를 향한 총구를 내린 적이 없다"며 "하지만 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과 방송사로 인해 국민들이 선동됐다"고 고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의 주적인 북한은 어떤 이유로도 미화될 수 없으며 드라마에서 북한군은 총칼을 겨누는 존재가 아닌 평화로운 인물로만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기독자유당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단체를 찬양 혹은 동조해서는 안 된다"며 "거짓 선동자들을 조속히 수사하고 엄중히 처벌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기독자유당이 언급한 국가보안법 7조 1항에는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사랑의 불시착' 첫 방송 전부터 배경이 북한이라는 점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이정효 PD는 제작발표회에서 "북한이라는 소재 자체가 거부감이 들 수 있다"며 "북한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작품 안에서는 주인공들이 로맨스를 펼칠 수 있는 단절된 공간이자 상황으로만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남북 분단을 다룬 한국 작품의 주인공들은 비장감마저 감돌게 했다. '쉬리'(1999)는 남한에 침투한 북한 특수공작원 이방희(김윤진 분)와 대한민국 정보원 유중원(한석규 분)의 비련을 그린 영화로 분단의 비극이 잉태한 남녀의 사랑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남북 병사들의 우정을 소재로 삼았으나 답답한 현실 문제 제기에 그쳤다. 그럼에도 설정을 둘러싸고 보혁간 정치 논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이정효 PD의 말마따나 '사랑의 불시착'에 "북한의 생활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로맨스와 어우러져 드라마를 구성하는 재미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여느 나라와 다른 특수성 때문에 판타지적인 요소로 북한을 배경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드라마에는 장마당(재래시장)에서 아랫동네(남한) 상품을 몰래 사고 팔고, 북한 군인들이 사택에서 남한의 전기밥솥과 대형 벽걸이 TV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몰래 남한 드라마를 보고 K팝을 듣는 이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평양에서조차 툭하면 정전이 발생하고 기차가 멈춰 12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 민가에 대한 숙박검열이 언제 이뤄질지 모른다. 호텔방 여기저기에 도청 장치가 숨겨져 있다. 언제 무슨 이유로 보위부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이런 '사랑의 불시착'이 북한을 '찬양 혹은 동조'하는 드라마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드라마를 보고 북한에 대해 동경하거나 북한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할 이는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 상업 드라마를 국보법으로 고발한다는 게 좀 황당하기까지 하다. 영화나 드라마는 장르 특성상 픽션을 주로 다룬다. 게다가 우리 시청자가 허구에 영향받을 만큼 수준이 낮지도 않다.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혹시 시청자의 문화 향유 수준이 낮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위해 드라마 맨 앞에 이런 문구가 뜨는지도 모르겠다.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사건, 조직 및 배경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도 없음을 밝힙니다."




이진수 선임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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