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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어프로치]신격호를 통해 본 상장 vs 비상장…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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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롯데를 세우고 1965년 한일 수교를 계기로 입국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오른쪽 첫번째).<사진제공=롯데지주>

일본에서 롯데를 세우고 1965년 한일 수교를 계기로 입국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오른쪽 첫번째).<사진제공=롯데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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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롯데제국 일군 신격호
비상장 고집했다 '뉴 롯데'로 변화
가구제국 이케아는 여전히 비상장·폐쇄주의
석유제국 아람코의 기업공개, 기업가치만 1900조 육박


19일 타계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롯데제국을 일구었지만 철저한 비상장을 고집해 폐쇄적 경영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들 신동빈 회장이 '뉴 롯데'를 선언하며 지주회사 체제와 주요 계열사의 상장을 추진하기까지 한국 롯데는 롯데칠성음료(1973년상장), 롯데쇼핑(2006년 상장) 정도를 제외하곤 대부분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했다. 이를 두고 소수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해온 것은 과거에는 합법인 동시에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일본 롯데는 상장사가 전무하다.


신격호 명예회장을 보면 가구공룡 이케아의 창업자로 2018년 1월 91세로 별세한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떠오른다. 캄프라드는 1926년 스웨덴의 스몰란드에서 태어나 17세인 1943년에 이케아를 설립했다. (신 명예회장은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48년 도쿄에서 껌 사업에 뛰어들며 ㈜롯데를 창업했고 965년 한일 수교를 계기로 한국에서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오랜된 차를 몰고 가격이 싼 곳을 찾아다니며 검소한 삶을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스웨덴의 높은 소득세를 피하려고 스위스 로잔에서 산 것으로 알려졌다. 50조원의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이케아지만 지배구조가 제대로 드러난 적이 없다. 아들 대(代)로 경영이 넘어갔지만 여전히 여러 나라에 분산된 재단들이 소유하는 비상장을 고집하고 있다. 반면에 오일머니의 대명사인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는 상장을 결정하며 지난달 사우디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전체 지분의 1.5%만을 상장했음에도 최초 공모액이 세계 기업공개 사상 최대인 256억달러에 달했다. 아람코 전체 기업가치는 1조60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한화로는 1900조원에 육박한다.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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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주 지분 넘고 물량도 적은 상장사
비상장 원했지만 개발연대 시절 강제상장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50%가 넘고 물량도 적은데 굳이 상장한 이유가 있나요"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정부가 하라니 어쩌겠습니까. 괜히 주주들한테만 미안해지죠"

예전 한 중견기업 임원과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이 기업은 창업 2세로 접어들고 업황부진에 사세가 기울어지며 급기야는 주인이 바뀌고 상장폐지의 아픔을 겪었지만 1970년대 상장할 때만해도 탄탄한 기업이었다. 오너가는 비상장을 원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강제적 기업공개정책 대상 기업에 포함돼 강제상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말만 상장기업이었지만 증시에 재료가 될 만한 이슈도 없었고 증자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오너가도 주가관리에 관심이 없었고 투자자에게도 사고 팔 만한 매력적인 종목이 아니었다. 이 기업 외에도 적지 않은 기업들은 강제상장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장사가 된 곳이 더러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과거 개발연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에 정부는 유도적 기업공개정책(68∼71년), 강제적 기업공개정책(72∼78년), 주식발행 확대정책 (85∼88년) 등의 자본시장정책을 펼쳐왔다. 유도적 기업공개정책을 통한 실적이 저조하자 유신체제와 함께 나온 것이 강제기업공개정책 카드다. 금융위원회와 KDI국제정책대학원이 개발도상국에 우리나라의 경험을 전수하고자 2012년에 펴낸 '기업공개와 유통시장정책 경험'보고서를 보면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5월 29일 내각에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 풍토의 조성을 위한 5개항의 특별 지시문'을 내보냈다.


박정희의 특별지시문 5개항 발표
특정인과 가족에 세습은 폐습
금융ㆍ외자 의존 말고 자본확충하라 주문


특별 지시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업계에는 특정인 중심의 가족적 기업군이 형성되어 이른바 무슨 그룹이니 하여 무리하게 여러 종류의 기업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사례조차 있습니다. 그 결과 일부에서는 기업을 일으키고 키워 나감으로써 보람을 찾기보다는 오랜 인습과 타성에 젖어 기업 자산을 소수의 특정인과 그 가족의 손에 집중하려는 폐습이 남아 있으며, 이와 같은 현실은 오히려 기업의 건실한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은 원래 미약한 자기 자본에서 출발하였고, 또한 그 연륜도 짧기 때문에 주로 금융과 외자에 의존하여 성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창업기에 있어서의 무리한 경영방식을 탈피하고 기업주식을 널리 공개하여 자본이나 경영면에서 개인의 능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시점에 당도하였다고 봅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하고 금융이나 외자의 지원이 일부 기업에게, 특히 비공개대법인에게 편중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기업공개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함과 아울러 기업과 대주주에 대한 세무관리를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한편, 기업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능을자각하고 기업의 문호를 널리 개방하여 참신한 경영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우리 기업이 명실상부한 국제적 기업으로 도약하고 우리 경제가 그 체질을 개선하여 번영의 80년대를 향한 또 하나의 전기를 맞도록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별지시문의 5개항은 ▲금융, 외자 또는 세제의 운영에 있어서 기업공개를 적극 유도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참신한 경영인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공개법인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 ▲고객의 융자 또는 외자지원을 받은 비공개 대기업(계열기업군을 포함한다)과 동 기업의 대주주에 관하여 그 여신과 납세상황 등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종합 관리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할 것 ▲대기업, 특히 비공개 대법인에 대한 여신관리를 강화하여 기업의 과도한 금융 의존을 시정토록 할 것 ▲ 금융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기업인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기존 기업의 일부 또는 그 주식을 공매하여 자금을 조달하도록 지도할 것 ▲기업 및 대주주에 대한 세무관리를 강화하고 기업에 대한 외부 감사제도를 보강하여 기업의 공신력을 높이고 기업자산의 충실화를 기하도록 할 것 등이다.

1973년 1월 4일 증권시장 개장식에서 남덕우 당시 재무부장관이 격탁을 치고 있다.<사진=한국거래소>

1973년 1월 4일 증권시장 개장식에서 남덕우 당시 재무부장관이 격탁을 치고 있다.<사진=한국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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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베일 공사 따낸 현대건설
발행가 차이 커 상장미루다 정부와 타협
증권시장 대신 국민건강 주장에 현대아산병원 탄생


정부는 경제단체의 자발적인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당시 상공회의소 회장인 김성곤 회장에게 협조를 구했고 당시 경제수석 비서관인 김용환 수석은 김성곤 회장을 청와대로 초치해 쌍용양회의 공개를 권했다 1974년 7월 8일 김성곤 회장은 마침내 기자회견을 통해 쌍용양회의 공개를 선언했다.


1975년 9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상장돼 당시 부여받은 거래소 코드를 2011년 8월 현재(보고서가 나온 시점 기준) 까지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104개로 삼성물산 (1975.12.12), 선경 (SK네트웍스, 1977.6.30), 한화 (한국화약, 1976.6.24), 대우증권 (1975.9.30), 현대증권 (1975.9.30), 태광산업 (1975.12.27), 금성전선 (LS, 1977.6.30), 농심(1976.6.30), 선경합섬 (SK케미칼, 1976.6.29), 고려제강 (1976.5.25), 남양유업(1978.6.24) 등이다.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이 2008년에 낸 '혼(魂)이 있는 공무원'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1976년 수주규모가 9억6000만달러인 사우디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하며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도약했지만 기업공개는 미루고 있었다. 회사측과 당국이 생각하는 발행가격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의 설득으로 1977년 기업공개가 결정된 바 있지만, 전국에 5개 종합병원을 세우는 것을 조건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양해를 구해 한동안 비공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을 공개해 주식을 헐값에 내놓으면 500억 원의 이익이 증권시장에 들어가는데 그 돈을 가지고 국민건강을 돌보겠다는 주장에 대통령도 동의 한 것이다. 그 때 만들어진 병원이 현대아산병원이라고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1월 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테슬라 공장 인도식 행사에서 막춤을 추고 있다.<자료사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1월 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테슬라 공장 인도식 행사에서 막춤을 추고 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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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이 대세인 시대지만 비상장도 장점 많아
공매도에 시달리던 머스크의 상장폐지 해프닝도


"경영에 왕도는 없다"는 말처럼 상장과 비상장은 장점과 단점이 동면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선택은 주주와 경영진의 몫일 것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을 하면 무엇보다 자금조달이 쉽고 기업의 신뢰도와 인지도가 높아진다. 법적으로 상장사에 주어지는 혜택이 많고 주가가 오르면 주주(고객,투자자, 직원 등)들에게는 이익이 돌아간다. 이를 뒤집어보면 상장의 단점이 비상장의 장점이 된다. 상장을 하면 대주주의 지분율이 비상장 당시보다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지분율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지분율을 높이거나 경영권 방어에 나서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데 이 때는 상장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감당하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기관, 외국인, 소액주주, 당국 등으로부터 간섭을 받게 되고 각종 공시로 회사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 트위터에 "주당 420달러에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금은 확보돼 있다"고 올렸다가 거센 역풍을 맞아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머스크는 폭탄선언 배경을 두고 여러 입장을 내놨다. 하나는 "주주들의 압박에 시달리던 중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이 테슬라 비상장전환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했지만 사실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매도 세력의 극한 고문에 힘들어했다"는 말에 더 힘이 실린다. 확인된 것은 머스크는 여전히 괴짜 CEO이고 테슬라는 주가가 오르고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호 편집기획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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