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신상공개 '배드 파더스' 사이트 운영진 무죄
재판부 "'비방'목적보다는 '공익성'커"
구본창 활동가 "양육비 피해자 상담 부모들 줄 이어"
"무죄 판결로 신상공개 더 늘어날 것"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솔직히 놀랐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 신상을 공개한 '배드 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이트 운영진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해당 부모들의 신상 공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비방의 목적은 없다고 판시했다.
'배드 파더스'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신상정보를 올리는 구본창(58) 활동가는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이런 판결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원래 이 일을 시작할 때 법적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고소만 15번을 당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이트에는 양육비를 내지 않는 부모 400여 명의 이름과 사진 등이 공개돼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는 모두 113명(남성 98명·여성 15명)이다.
구 씨는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라고 제보받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미지급 양육비 등 신상 정보를 '배드 파더스'에 올려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8년 기소됐다.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16시간에 걸쳐서 열렸다. 배심원단이 모두 무죄 평결을 냈고, 재판부는 무죄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가를 받는 등 이익을 취한 적이 없고, 대상자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으로 공격한 사정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수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고, 문제 해결 방안이 강구되는 상황"이라며 "피고인의 활동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2018년10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사진 내리지 않으면 파묻어 버린다" 각종 살해 협박 시달려
구 씨는 '배드 파더스' 활동을 하면서 각종 협박에 시달렸다. 그는 "신상이 공개된 한 남성은 자신이 유흥업소 쪽 일을 한다며 동생을 시켜 살해하기 전에 이 일을 그만두라는 협박을 했다"고 협박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협박을 비롯해 각종 비난과 협박이 계속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구 씨는 "사진을 내리지 않으면 파묻어 버린다는 협박도 받았다. 아무래도 피곤하다"고 토로했다.
이런 협박은 구 씨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구 씨는 "신상이 공개된 남성 중 일부는 아이들 엄마에게 연락해 당장 사진을 내릴 것을 강요한다"면서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양육 문제도 문제지만, 이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상처가 더 문제다"라고 말했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이 '단순히 돈을 주지 않는다' 이런 문제 이상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다. 부모 자식 인연이 끝나는 일로 고통은 감히 예상도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음의 상처도 치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무죄 판결로 용기 내는 여성 늘어…신상공개 늘어날 것"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 80%가 여성이라고 설명한 구 씨는 "이들은 보통 가정폭력 피해자들이다.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 다만 이번 무죄 판결로 인해 용기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씨에 따르면 지금까지 '배드 파더스'에 부모 신상공개 상담을 요청한 이들은 3500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400여 명만 신상공개를 요청했다. 전체 피해자 중 약 11%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셈이다. 그 가운데 113명이 양육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번 무죄 판결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공개 요청은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구 씨는 "이번 무죄 판결로 용기를 얻은 여성들이 많다"면서 "판결 직후 신상공개 등에 관한 상담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가 양육비 지급을 미루다 '배드 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될 것을 우려, 즉시 양육비를 지급했던 일을 꼽았다.
구 씨는 "월 500만원씩 4년간 총 2억4000만원의 양육비를 주지 않은 아빠였다"면서 "이 남성의 직업은 대형 로펌의 변호사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마는 혼자 남게 된 이후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자식을 돌봐줄 수도 없고, 마음도 지치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면서 "그러다 배드 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말하자 바로 양육비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 코피노 돕다가 국내 상황으로 눈 돌려…'양육비 지급 제도' 만들 것
구 씨는 당초 2013년 필리핀에 설립된 WLK(we love kopino) 대표로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 나은 아이들)와 그 엄마들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돕는 활동을 했다.
그러다 한국에 있는 양육자들이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을 알고,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등으로부터 제보받은 사람들의 얼굴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미지급 양육비 등 상세한 정보를 올렸다.
'배드 파더스' 운영진들은 현재 입법 활동을 통해 실질적 양육비 이행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배드 파더스'와 양육비해결총연합회는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입법부터 시작해, 현실성 있는 양육비 지급 제도가 입법될 수 있도록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한 신상공개를 지속해서 할 방침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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