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금액 역대 최고치 경신했지만 투자는 초기기업에 쏠려
2년 뒤 유니콘 20개 목표로 3년간 12조 스케일업 펀드 조성
미국과 건당 벤처투자금 7배차, 스케일업 기업은 해외 투자 의존
M&A 드문 좁은 회수시장…국내 스타트업 저평가 악순환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인 쿠팡은 3조원이 넘는 누적 적자에도 불구하고 점유율을 늘리기에 집중해왔다. 쿠팡은 2015년과 2018년에 두 번에 걸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총 3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쿠팡이 밀어부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익 창출 능력보다 시장점유율을 50~80%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투자한다는 비전펀드의 철학 덕분이다. 비전펀드는 건당 최소 5억~10억 달러를 투자하며 디디추싱, 우버, 위워크, 쿠팡, 그랩 등 각 분야 1위 기업에 투자해왔다. 위워크가 IPO에 실패하면서 손정의 회장의 투자 방식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손정의 회장은 "위워크가 제대로 수익을 못 낼 것이란 우려는 20년 전 인터넷 초창기 때 나왔던 비판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경쟁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됐다. 이번 M&A를 두고 '게르만 민족'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국내에서 유니콘기업이 M&A를 택한 첫 사례였다. M&A가 활발한 미국과 다르게 국내는 여전히 M&A에 대한 부정적이 인식이 강하다. 김봉진 대표는 경영권을 지키면서 아시아로 무대를 확장하기 위해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창업자로서 직접 상장을 하지 못한 점, 독일에 상장하는 회사가 된다는 점은 아쉽다"면서도 "인터넷 서비스는 국경이 없다. 한국에서만 잘 한다고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건 선배기업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벤처투자금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국내에서 탄생한 유니콘 기업의 숫자는 11개로 늘어났다. 스타트업 투자와 관련한 양적 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질적 성장 지표의 발전은 더디다. 정부가 벤처투자 활성화를 앞세워 투자금은 풍부하지만 투자나 지원이 초기 기업 투자에 몰려 스타트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스케일업' 과정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스케일업 기업 키우려면 투자 대형화 필수
스케일업은 기업의 매출 또는 고용에서 급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10명 이상 고용하고 매출이나 또는 고용이 3년 연속 20% 이상 성장하면 '스케일업 기업'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제2벤처붐'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20개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벤처 정책의 방향이 '창업초기 기업' 지원에서 잠재력 있는 기업의 스케일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3년간 12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8년 국내 벤처캐피털(VC)의 평균 투자금액은 25억원, 50억원 이상 투자건수는 전체의 1.3%에 그치고 있다. 국내 VC는 기업가치가 1000억원 미만인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고 100억원 넘는 투자금을 한 군데에 넣는 경우가 드물다. 초기 기업을 육성하려는 VC는 많지만 정작 잠재적인 유니콘 기업에 크게 배팅하는는 VC는 찾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는 "국내 VC의 벤처펀드 규모가 500억원 안팎이다 보니 100억원 이상 투자를 할 때 다른 투자사들과 십시일반하는 '클럽딜' 방식이 대부분"이라며 "쪼개기 투자가 심해지면 주주가 많아져서 스타트업들이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리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 스타트업들은 후속 투자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무역협회가 2013~2015년 사이에 엔젤 투자를 유치한 한국ㆍ미국ㆍ중국 스타트업을 2019년 4월까지 추적한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중국의 스타트업들은 시리즈C 투자 유치 유치율이 33~39%에 이르는데 한국 스타트업은 15%에 그친다. 좁은 내수시장, 규제, 회수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요건들이 맞물린 결과다.
VC는 소규모 투자 선호…좁은 회수시장
미국과 벤처투자 실적을 비교해보면 국내 벤처투자가 소규모라는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2018년 기준 국내 건별 벤처투자액은 25억원, 미국의 경우 1400만달러(약 154억원)로 7배 차이가 난다. 벤처투자금 총액도 2018년 기준 한국은 3조4000억원, 미국은 1321억달러(약 152조5800억원)로 40배 가량 차이가 난다. 기업 가치가 커지면서 많은 투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스케일업 기업들이 해외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를 비롯해 2017년부터 기술기업에 거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펀드들이 생겨났고 미국에서는 2018년에만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펀드가 11개나 결성됐다.
투자의 대형화가 더딘 이유는 '회수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영향도 크다. 국내는 M&A나 IPO가 활성화돼있지 않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회수 방식 중 M&A 비중은 3%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43%, 유럽은 35%에 이른다.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대기업들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M&A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이다. 나수미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대기업의 M&A 활동이 기업경영권 탈취행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남아 있다"며 "대기업들이 국내 스타트업 M&A를 주저하면서 시장이 위축되고 국내 스타트업이 저평가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고 지적했다.
국내 유니콘 기업의 주요 투자자 명단에서도 국내 투자사들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국내 11개 유니콘 기업이 있는데 주요 투자사 18곳 중 한국 투자사는 5곳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유니콘기업 30개사의 주요 투자자 중에 한국 투자사는 한 곳도 없다. 디디추싱은 한국투자파트너스, 그랩은 현대자동차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주요 투자자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준영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의 건당 벤처투자 평균 규모가 2013년 미국의 3분의 1에서 2018년에는 6분의 1로 오히려 격차가 늘어났다. 기업성장에 충분한 규모의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투자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 관점에서 속도나 규모에 관심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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