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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어프로치]연돈 돈까스 줄서기대행 금지…경제 vs 정의 2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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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오픈한 연돈 첫날부터 대기행렬 장사진
품질·가성비·부부 장인정신…백종원 효과겹쳐 인기
대리 줄서기 적발시 영업종료 두고 논란
경제적·공리적 측면에선 줄서기대행은 윈윈
줄 서는 행위도 돈으로 사는 시대…정의로 보긴 어려워
제주에 문을 연 연돈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SBS '골목식당'방송 캡쳐> 사진 오른쪽 상단은 대리 줄서기를 금지하는 안내문.

제주에 문을 연 연돈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사진 오른쪽 상단은 대리 줄서기를 금지하는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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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골목식당'에 나와 화제를 모은 '연돈'(옛 포방터 돈까스집)이라는 돈까스 전문점이 제주로 터전을 옮겨 새로 오픈했다.이 집의 돈까스(표준말은 돈가스이지만 여기서는 돈까스로 통일한다)를 맛보고 인증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번호표를 받으려는 대기행렬이 한 겨울 추운 날씨에도 장사진을 이룬다. 이른바 연돈신드롬이 생긴 것은 ▲지상파에 등장하며▲백종원이 인정한 맛과 서비스였고▲무엇보다 연돈을 운영하는 부부의 고집스런 장인정신과 노력 등의 스토리텔링이 더해지고 ▲여기에 하루 100개라는 한정판매가 고객심리를 자극하고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라는 군중심리 동조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당 수 만원에서 10만원까지 줄서기 대행알바까지 등장하자 연돈은 공지문을 내걸었다. "타인을 대신해 명단을 작성하거나 대신 줄을 서고 금품을 거래하는 제보를 받거나 적발시 당일 영업강제종료합니다"라는 것이다. 줄서기 대행 또는 줄서기 알바와 이를 금지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상이하게 해석된다. 시장경제학적 측면에서 보면 줄서기 대행은 당연한 결과다. 수요와 공급이 과도하게 불균형된 상태에서 연돈의 돈까스를 먹으려면 반나절도 아니라 하루를 꼬박 줄을 서야 한다. 돈까스를 소비하는 금액이 1만원 내외에 불과하지만 핵심은 금액이 아니라 소비행위와 인증행위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1만원짜리 돈까스 먹기 위해 10만원을 기꺼이 지출할 수 있고 이 비용을 10시간 이상 줄을 선 사람(나의 불편을 줄여주는 사람)에게 지불할 수 있다. 대신 줄을 서고 금품을 거래하는 행위는 불법은 아니지만 '줄을 서는 사람=돈까스를 먹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장사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고 영업방해행위로 볼 수 있다. 연돈을 찾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유명한 돈까스를 직접 먹어보는 행위" 등의 일련의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줄서기 알바를 쓰지 않고 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일손과 일감을 매칭하는 플랫폼 '품'에서 줄서기 검색 결과 화면.  하단 왼쪽 두번째에 연돈 줄서기 알바를 구한다는 일감이 올라와 있다.

일손과 일감을 매칭하는 플랫폼 '품'에서 줄서기 검색 결과 화면. 하단 왼쪽 두번째에 연돈 줄서기 알바를 구한다는 일감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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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대행을 둘러싼 찬반 양론에 대해서는 '정의'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2012년 국내 출간)에서도 다루어진다. 책에 따르면 여름마다 뉴욕의 퍼블릭시어터는 센트럴파크에서 셰익스피어 무료 야외공연을 연다. 오후 1시부터 배포하는 저녁 공연 입장권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2010년 '베니스의 상인'에서 알 파치노가 샤일록으로 출연했을 당시 입장권 수요는 엄청났다. 편리를 얻는 대가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위해 대신 줄을 서고 입장권을 받아주는 사업이 생겼다. 대리로 줄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라인스탠더(line standers)들은 온라인 벼룩시장 사이트에 자신들의 서비스를 광고했다. 그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견뎌내는 대가로 무료 공연 입자우건에 한장당 125달러를 청구했다.


극장측은 "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줄서기 대리행위는 셰익스피어 정신에 어긋난다"라고 주장하면서 라인스탠더들의 영업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뉴욕 검찰도 대리 줄서기로 입장권을 구해준다는 광고를 중단하게 만들었다. 백악관과 의회가 있는 워싱턴 D.C.에는 이미 줄서기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와 달리 로비와 로비스트제도가 합법화돼 있고 역사도 오래돼 있다. 로비스트들에게 의회 안에서 벌어지는 공청회 참가는 로비활동의 핵심이다. 로비스트 대신 줄을 서는 데에는 1시간에 10달러에서 20달러까지 받는다고 한다.

미국 줄서기 대행 전문기업 라인스탠딩닷컴의 홈페이지 화면

미국 줄서기 대행 전문기업 라인스탠딩닷컴의 홈페이지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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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도 소개된 대리 줄서기 사업체인 라인스탠딩닷컴(linestanding.com)은 다음과 같이 회사를 소개한다. "우리는 워싱턴 D.C. 지역의 어느 곳에서나 의회 청문회와 각 위원회 및 미국 대법원을 전문으로 사람들을 제공하며 실시간 랑데뷔 확인을 제공합니다. 특정 이벤트와 관련된 모든 추적 정보를 받으려면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세요"


국내에서도 품(pooom)이라는 사이트는 "주변 일손이 필요한 사람과 일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주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연돈 줄서기 대행도 있었다.


샌델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사람을 고용해 대리로 줄을 세우거나 암표를 파는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서 "줄서기의 옹호론자들은 개인의 자유존중과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를 주장한다. 후자인 공리주의자는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지불한 사람과 대리로 줄을 선 사람 사이에 거래가 성립했다는것은 결과적으로 양측이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샌델은 그러나 "재화가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하려면 (공연이나 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려는 마음'보다는 기꺼이 '줄을 서려는 마음'이 그것을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다. 시장 및 시장가치가 유례없이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게 됐다"고 했다.


연돈이 하루 100개 한정판매를 벗어나 대량 판매가 가능해지면 모를까, 그 전까지 줄서기는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이를 둘러싼 논란과 뒷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경호 편집기획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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