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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동들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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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아동들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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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국제협약인 유엔(UN) 아동권리협약은 아동 또는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모든 아동의 권리가 보장돼야 함을 강조한다. 또 당사국으로 하여금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서 아동의 최상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땅에서 어떤 아동들은 법과 제도의 미비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별에 노출된다. 출생이 신고되지 않아 존재하나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동들의 이야기다.


출생신고는 아동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시작점이다. 법과 제도가 아동의 다양한 권리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아동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으면 권리를 누릴 수 없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국적도 증명할 수 없고 학대나 유기, 불법 입양, 인신매매에 노출돼도 보호받을 길이 없으며 제때 적절한 예방접종도 받을 수 없다.

한국의 현행 출생신고제도는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에 의해 처리돼 가족관계등록제도의 일부로 존재한다. 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모에게 일임하고 있다. 문제는 부모가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 국가가 출생신고 누락 사실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 실제 2016년 광주에서 부모가 자녀의 출생을 제때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사례도 있다. 이 아이들은 발견 당시 10대였음에도 발견 후에야 출생이 등록됐으며, 그 전까지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의료보험 등 혜택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아동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이 '국민'의 출생에 대한 등록과 그 증명에 대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함에 따라 국민이 아닌 외국인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출생에 대한 등록과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국제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모든 아동이 재외공관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공포로 국적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 아동이 대표적인 예다. 그 밖에도 한국에 영사관이 없는 국가의 국민, 아버지의 정보를 모른다는 이유로 출생신고 접수가 거부되는 경우 등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 중 국적국의 재외공관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사실상 무국적자가 되는 다양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사실상 무국적자가 된 이주아동들은 어느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부모의 국적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아동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해서 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여 아동단체와 이주민단체, 법률지원단체 등 14개의 단체들은 2015년부터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를 조직해 매년 토론회, 법제도 개선 추진, 대중 캠페인 등 법률 지원 및 인식 개선 활동을 계속해왔다. 다양한 기회를 통해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최소한 한국에서 출생한 아동들은 한국에서 출생 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아직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재 발의된 관련 법의 개정안은 법무부 등의 반대로 20대 국회 회기 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출생신고는 아동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시작점이다. 아동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 보장을 시작으로 모든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아동 인권과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김진 사단법인 두루 외국변호사(국제 인권·아동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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