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뉴욕 유엔(UN) 총회 이후 1년3개월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이달 23~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제8차 한ㆍ중ㆍ일 정상회의 기간 중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이후 '강 대 강' 대결구도로 치닫던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길 기대한다.
11월22일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유예했기에 일본도 우리나라와의 관계 정상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 타격을 주기 위해 종료 결정을 내린 GSOMIA가 사실은 주한 미군들의 안위에 결정적이란 점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연일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에서 강력한 어조로 한국 정부 결정을 비판하면서 종료 결정 취소를 요구했다. 종료 시한을 앞두고 급기야 미 국방안보 고위당국자들이 한일을 방문해 중재에 나섰고, 우리나라는 GSOMIA 종료를 취소하고 일본은 수출규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월22일 일왕 즉위식을 앞두고 화해 무드를 조성하자는 논의가 국내에서 제기됐다. 논란이 있었지만 정부는 총리의 방일을 결정했다. 한일 갈등으로 인한 문제점과 GSOMIA 헛발질에 대한 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11월 초 방콕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대기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예정에 없던 환담 자리를 만들었고, 청와대는 관련 사진을 외국어 해설까지 곁들여 국제적으로 돌렸다. 일본은 적절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우리 국민들에게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으로 비쳤다.
3개월짜리 반일 정책이 흔들리면서 그동안 반일 프레임을 주장하던 언론과 반일 인사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여름 내내 일본을 자극하고 반일 대열에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한 '이순신' '죽창가' 구호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사이 당초 예상과 달리 일본 당국이 규제하기로 발표했던 3개 물질에 대한 수출허가를 내주면서 일본 비난에 대한 정당성이 희석됐다.
미국의 압력으로 GSOMIA 종료를 철회하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일본의 사과를 거론했으나 일본의 설명이 달라 한동안 양국 간 낯뜨거운 입씨름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 정상회의가 개최돼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일 모두 자국민에게는 상대가 굴복했다는 점을 과시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조원 단위 예산 지원으로 일본에 의존하던 핵심 부품을 국내 생산으로 대체할 수 있고, 수출규제로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정부와 반일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갑자기 우리나라가 일본에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GSOMIA와 수출규제를 맞교환하자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행을 문제삼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결실을 내기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 이행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회의가 될 것이다.
2015년 5월 도쿄 회의 이후 4년6개월 만에 한ㆍ중ㆍ일 정상회의가 열린다. 일ㆍ중 간 반목으로 회의가 열리지 못했으나 지난해 이후 일ㆍ중은 긴밀한 협력관계로 복원됐다. 이제 한일 간 관계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국 모두 반일 기조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꼼수를 버려야 한다. 어느 쪽이 더 다급한가는 확실해졌다. 금융위기 때보다 우리 경제사정이 더 나쁘다. 한일 및 한ㆍ중ㆍ일 협력으로 악화된 대외 통상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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