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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교황의 방일, 사죄 없는 日에 면죄부 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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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진수 선임기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 교황의 방일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38년 만의 일이다.


교황은 24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 중심부에 건설된 평화공원에서 미사를 올린 뒤 또 다른 피폭지 히로시마도 방문한다. 25일에는 도쿄로 이동해 나루히토 일왕,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난다. 이후 도쿄돔에서 다시 미사를 봉헌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일하는 것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핵무기 폐기를 줄곧 주장해왔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도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교황의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13일 교황의 방일과 관련해 "국제사회에 피폭의 진상을 정확히 알리는 것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피폭의 진상'이라는 말이다.


교황의 이번 방일은 아베 총리의 집요한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다. 아베 정권은 내년 도쿄올림픽에 앞서 일본의 재건과 청정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해왔다. 그 일환으로 '교황 마케팅'을 마련한 것이다.

과거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학살ㆍ강간, 강제징용을 일삼았던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떤 가해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날조라고 강변하는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가 인기를 얻고,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를 찬미하는 영화 '프라이드, 운명의 순간'(1998)이 일본 전역에서 호응 받기도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징용공)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은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도발은 대중문화 매체를 통해서도 지속되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자국 근대화 시기의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의 생애를 오는 2021년 방송할 대하드라마 소재로 확정했다고 지난 9월 9일 발표했다.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의 절친이기도 했던 시부사와는 '근대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일제의 한반도 경제 침탈에서 선봉에 섰던 자다.


일본은 당치도 않게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국이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자국이 2차대전 중 원자폭탄에 희생됐으며 종전 후 차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과거 자국의 만행이다. 일본 스스로 침략국이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1988)에는 1945년 태평양 전쟁의 가해국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평범한 어린 남매에게 닥친 비극이 그려져 있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 '나오키' 수상작이 원작인 '반딧불이의 묘'는 전쟁의 잔혹함과 패전국 일본의 피폐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영화는 "일본도 피해국"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의 아이들은 왜 자기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지 근본 까닭은 모른 채 하늘을 뒤덮은 미군 폭격기가 밉고 또 미울 뿐이다.


역사적 반성조차 없는 일본이 교황의 미사 장면을 TV로 세계인들에게 생중계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전쟁의 피해를 딛고 일어난 일본의 새로운 영광과 새로운 무장을 선전하려 들 건 뻔하다. 교황의 방일이 역사적 사죄나 반성 없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교황의 미사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야심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게 뻔하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교황의 염원은 반드시 응답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인류에 반(反)한' 범죄자의 진정한 참회가 선행돼야 한다.


짓밟고 사과하지 않는 자의 편에 들러리 서는 게 아니라 짓밟히고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듣지 못한 자를 대변해 이야기해주는 게 교회의 의무다.




이진수 선임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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