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는 남과 북을 가로 막는 거대한 장벽이자 장애물로 한국전쟁과 그에 따른 정전협정의 산물이다. 협정이 체결된 지 66년이 넘는다. 이토록 오랜 세월 국지적 휴전상태인 정전협정이 지속되고 있는 경우는 한반도가 유일하다.
폭 4㎞, 길이 248㎞의 광대한 DMZ는 냉전과 분단, 전쟁과 평화의 세계사적 의미와 상징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에 DMZ는 생태계의 보고가 돼버렸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국토 총면적의 1.6%에 불과한 이 지역에 멸종위기 91종 등 총 5978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한반도 생물종의 24%를 차지하는 놀라운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유엔 산하 기구, 평화ㆍ생태ㆍ문화 관련 기구를 평화지대에 유치하고 DMZ를 남과 북이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하며 38만발에 달하는 DMZ 내 지뢰를 국제사회의 협력 아래 단시간 내에 제거하자는 비전과 계획이다.
이를 '장밋빛 환상'으로 평가절하하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DMZ 관할권은 정전협정의 유지ㆍ관리 책임이 있는 유엔군사령관에게 있는데 유엔사와 긴밀하고도 충분한 사전 협의 없는 구상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북한이 10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평화지대 구상을 거론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 일리가 없지 않으나 DMZ 평화지대화 구상이 비핵화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향적 인식과 접근이 필요하다.
정전협정은 제1조에서 DMZ의 성격을 '완충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발생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진화한 형태의 완충지대를 구축해나가는 것으로 유엔사의 기본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은 지난해 남북 정상 간 합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4ㆍ27 판문점 선언'은 제2조 1항에서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정상 간 합의 내용을 적시하고 있다.
'9ㆍ19 군사분야 합의서'는 이를 더 구체화하고 있다. DMZ 내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와 함께 DMZ 내 유해발굴이 추진 중이다.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조성된 '평화의 길'을 트레킹 코스로 개방하고 있다. 모두 'DMZ를 군사적 충돌이 영구히 불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 한반도에 평화를 뿌리내리게 하자'는 기대와 염원을 담고 있다.
비핵화를 위한 북ㆍ미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셈법' 요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방법'을 언급하는 상황이다. 북ㆍ미 협상을 앞두고 북한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주장에서 한 발 물러나 체제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DMZ의 국제평화지대화는 평화 담보 수준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다. 국제평화지대화의 핵심은 '북한의 안전을 제도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함의하는 바 크다. 모쪼록 이런 논의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를 견인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ㆍ안보통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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