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는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 국민의 관심은 집중된다. 수사기관은 국민에게 알릴 목적으로 브리핑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형사 피의자는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대상이지만 피의사실이 알려진다면 기소도 되기 전에 유무죄를 예단받게 된다. 즉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피의사실과 함께 개인정보가 노출되면서 인격권이 침해될 수도 있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해도 수사기관은 원칙적으로 형사 피의자의 피의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이를 규정한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한 번의 개정도 없이 지금까지 유지돼왔다. 그 취지를 보면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대상자인 피의자의 행위가 확정되는 경우, 범죄행위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지는 것 외에 명예훼손 등 사전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형법은 공무원의 범죄로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면서 검찰ㆍ경찰 등 수사 관계자가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 공표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 특히 우리가 공인이라 지칭하는 정치인을 비롯해 고위 공무원, 큰 기업의 대표, 사회적 명망가 또는 연예인 등이 연루된 사건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사 진행 과정과 수사 내용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더구나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형사 사건은 ICT의 발전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매체가 있다 보니 무조건 차단할 수도 없는 문제가 됐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제정 이후 상당 기간 큰 논란 없이 유지됐다. 그러다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서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2010년 법무부 훈령으로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준칙은 기소 전의 수사 사건에 대해서는 일체의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예외적으로 중대한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수사공보준칙이 시행되고 있지만, 상위 규범인 형법은 피의사실 공표 행위를 처벌한다. 비록 수사공보준칙의 목적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법률에 금지된 내용을 하위 규범인 준칙으로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은 법의 효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다. 수사기관이 공공성과 공익성의 관점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한다고 해도 피의자의 초상이나 성명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피의사실이 알려지면 인격권 등 기본권 침해와 무죄추정 원칙에 위배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피의사실공표죄의 목적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란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도 중요하다. 현행 수사공보준칙으로 피의사실공표죄의 예외를 두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 수사공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및 언론의 자유 간 조화를 꾀하는 것이 헌법에 합치된다.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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