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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광해 용상·서편제 북, 生死의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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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년 영화, 반백년 소품의 위기

한국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영화에 쓰인 소품들이 폐기 위기에 몰렸다. 기관이 나서서 체계적인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한국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영화에 쓰인 소품들이 폐기 위기에 몰렸다. 기관이 나서서 체계적인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영화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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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폐관 남양주종합촬영소 '서울영화장식센터'...57년 소품지기 김호길 대표

1800여종 40만점 제작 및 수집...'국제시장'·'태극기 휘날리며' 등 영화 200편 시대 고증 담당

영진위, 부산에 새 둥지 틀면서 소유권 넘겨 곧 운영 종료...창고 이전비만 1억 이상, 영화 기록·유산 보관 막막


남양주종합촬영소 서울영화장식센터 입구에는 낯익은 용상(龍床)이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 하선(이병헌)이 광해인 척 흉내 내며 정무를 보는 평상이다. 금색으로 도배돼 위엄이 느껴진다. 하선에게는 임금에 걸맞은 품위를 부여한다. “전하, 사대의 명분을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손을 내밀다니요.” “그깟 사대의 명분이 뭐요. 도대체 뭐길래, 2만의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라는 것이오?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사는 사대의 예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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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상에 가장 먼저 앉은 배우는 '연산군(1987년)'에서 연산군을 연기한 이대근이다. 김호길 서울영화장식센터 대표는 "연산군을 폭군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으로 조명한 영화다. 심오한 뜻을 담기 위해 당대 최고 목수들을 데려와 만들었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제작하고 수집한 소품은 1800여종 약 40만점. 57년 동안 영화 200편에서 소품을 맡았다. 창고는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김 대표는 "소품이 아니라 명품"이라고 했다. "임권택, 이장호 등 고증을 꼼꼼하게 하기로 유명한 감독들과 작업하느라 하나같이 신경을 많이 썼다.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했고, 정 구하지 못하면 최대한 똑같이 만들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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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안중근(1972년)'의 쌍두마차가 대표적이다. 지붕부터 수레까지 설계했다. 영화에서 안중근(김진규)이 집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할 때 사용한다. 니콜라 빌렘 신부와 대화할 때 강직한 신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상해에는 임시정부가 섰다지요.” “네, 저는 그쪽이 아니고 블라디보스크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는 소련 땅이지만 우리 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니까요.” “그렇습니다. 천주님의 가호를 빌겠습니다.”

이 마차는 'YMCA 야구단'에도 나온다. 일본군 클럽팀 성남구락부 주장 노무라 히데오(스즈키 가즈마)가 마차를 탄 아버지 노무라 히데노리(이부 마사토)에게 YMCA 야구단과 경기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녀석들은 잡힐 줄 알면서도 여기 왔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이해 못 하실지도 모르지만 이게 바로 스포츠입니다.” “너는 역시 군인 체질이 아니구나.”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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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마차 옆에는 인력거 두 대가 있다. YMCA 야구단에도 나오지만 '장군의 아들(1990년)'로 더 유명해진 수레다. 극장 앞, 대로 등에 수차례 등장한다. 일제강점기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1970년대 담배 판매대가 있다. '창(1997년)'에서 사창가 슈퍼마켓 입구에 진열된 가구다. 열일곱 살 영은(신은경)이 처음 사창가에 발을 딛을 때부터 보인다. 사내들의 무자비한 길들이기로 윤락녀가 된 여성들에게 유일한 휴식처다. 이곳에서 미숙(정경순)과 추억을 곱씹던 영은은 '고향생각'을 노래한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한번 떠나온 후에,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내 맘속에 사무쳐, 자나 깨나 너의 생각 잊을 수가 없구나, 나 언제나 사랑하는 내 고향 다시 갈까.”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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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군장, 소총 등 군사 소품은 따로 보관한다. 대부분 1940~50년대 물품이다. '태백산맥(1994년)',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국제시장(2014년)' 등에 나온다. '오! 인천(1981년)'에서도 볼 수 있다. '007 살인번호(1962년)', '007 위기일발(1963년)' 등을 연출한 테렌스 영 감독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조명한 할리우드 작품이다. 로렌스 올리비에, 재클린 바셋 등이 출연하지만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영 감독이 6ㆍ25 전쟁 때 한강인도교로 피난 가는 행렬을 한강에서 찍으려고 할 만큼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이 장면은 칠곡왜관교에서 재현해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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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당시 물품으로는 초콜릿, 여행가방 등도 있다. 대부분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한다. 큼지막한 초콜릿은 이진태(장동건)가 낙동강 방어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받아오는 군것질거리다. 동생 이진석(원빈)의 군복 안주머니에 직접 넣어준다. "너 이게 뭔 줄 아니? 이게 바로 우리 진석이가 제일 먹고 싶어 했던 초콜릿이야. 초콜릿. 먹고 모자라면 얘기해. 형이 말이야. 형이 달라면 언제든지 준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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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방은 1920년대 고리짝 가방부터 1930년대 쓰인 파이버트렁크까지 다양하게 진열됐다. 김 대표는 "국내 골동품 가게를 샅샅이 뒤져도 구할 수 없었다. 설령 대여섯 개를 구해도 몇 백 명이 등장하는 대규모 피난 장면을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방배동에 있는 이조가구 주인이 중국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런 가방이 많다고 해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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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편제(1993년)'를 상징하는 북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소리꾼 유봉(김명곤)이 동호(김규철)와 송화(오정해)를 각각 고수와 소리꾼으로 키울 때부터 사용하는 악기다. 김 대표는 촬영을 앞두고 네 개 준비했다. 각각 세월의 흔적이 다르게 묻어 있다. 김 대표는 "어떤 신부터 촬영할지 몰라 새 것부터 오래된 것까지 다양하게 마련했다. 한 개는 임권택 감독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머지 북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가 10월16일 문을 닫기 때문이다. 국토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소유권을 부영에 넘겼다. 입주 기업들에게 조속히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한 상태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남양주종합촬영소 영화 소품들./남양주=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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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1997년 영구 존치를 약속받고 터를 잡았다. 이렇게 황망하게 떠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창고에 있는 소품을 옮기는 데만 1억 원 이상이 든다. 임시로 보관할 장소마저 잡지 못해 답답한 심정이다"라고 했다. "소품은 우리 영화의 기록이자 유산이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 영화인들이 지켜줬으면 좋겠다."




남양주=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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