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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책섶]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 나는 기꺼이 고독을 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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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잊어버린 사람들…우리 삶 속에 ‘고독’은 왜 필요한 걸까?

[김희윤의 책섶]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 나는 기꺼이 고독을 택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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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순간, 그는 홀로 온전히 고립된 환경에 있었다. 힉스 입자로 널리 알려진 과학자 피터 힉스는 노벨상 수상 이후 관심과 명성을 얻자 1960년대에 내가 누렸던 평화와 고립은 이제 사라져버렸으므로 (그 당시에 이룬) 나의 선구적인 작업은 지금 같은 상황에선 성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수의 선철(先哲)은 자발적 고독 속에서 홀로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지만, 초 연결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고독을 낯설어하고 혹자는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티모시 윌슨 심리학 연구팀은 지난 2014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생각에 골몰할 수 있을지 살피는 심리 실험을 진행했는데, 주어진 15분간 홀로 앉아있기가 너무도 괴로웠던 많은 실험 참가자들이 급기야는 스스로 전기충격을 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윌슨 교수는 명상 또는 마인드 컨트롤 등의 훈련이 없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통제된 상황에서의)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철학자 올리비에 르모는 그 배경을 고독에 대한 ‘오해’에서 찾는다.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근대의 정치사상이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은 부각된 반면 사회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은둔 또는 고독은 일탈이나 문제로 치부되기 시작했다는 것. 르모는 이 과정에서 고독의 가치가 잊히고 폄하됐다고 지적한다.


예술가는 고독이란 질료가 있어야 비로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하여 모든 예술은 상당량의 고독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실존주의 문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프란츠 카프카는 일생 작품 활동을 위해 독신으로 인간의 실존적 불안에 천착한 천재 작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약혼과 파혼만 세 번을 반복했던 지독한 에고이스트였다. 파혼의 사유는 ‘혼자 글쓰기 위해서’였지만, 정작 그는 그녀와 정식으로 교제하기 전 자기 작품의 헌사에 그녀의 이름을 공공연하게 올려놓고는 “그 헌사는 이미 한 달 전에 쓰였고 원고는 제 소유가 아니니...”라며 뻔뻔한 편지로 절절한 마음을 고백하던 사내였다. 낮엔 노동보험공단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평생 글만 쓰며 사는 전업 작가의 삶을 꿈꿨고, 작가로서의 재능을 펼치려 그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퇴근 후뿐이었기에 결혼, 특히 가장으로서의 삶은 사치이자 낭비요 창작의 적으로 느꼈을지 모른다. 카프카는 고독을 위해 사랑을 수차례 저버렸고, 그 불행을 바탕으로 작품을 직조해나갔다. 결국 그는 마흔둘에 폐결핵으로 쓸쓸히, 홀로 눈을 감았다. 영원한 고독의 세계로 침잠한 것이다.


괴짜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글렌 굴드 역시 고독을 창작에 있어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젊은 시절 북극 여행을 다녀온 그는 야생의 대지가 품은 정적(靜寂)을 사랑했고, 사회에 과도하게 속해있는 것은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여겼다.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유명세를 치른 그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기가 쇠했고, 구름 낀 하늘을 볼 시간과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섬세한 기술인가를 삶 속 실천을 통해 보여준 좋은 교보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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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고독’에서 작가 르모는 가장 이상적으로 자발적 고독을 구현한 인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언급한다. 작가로 기억되지만 때로는 사회운동가이자 자연 철학자로도 불렸던 그는 스물여덟에 도끼 한 자루만 들고 고향 집에서 1.5km 떨어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살았다.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어 오두막에 들어갔지만 소로는 때때로 집에 들러 엄마가 해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자신의 빨래를 슬쩍 내밀었는가 하면 친구와 이웃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때문에 그의 저작 ‘월든’의 진정성을 많은 이들이 의심했지만, 르모는 소로가 월든 오두막에서의 고독을 선택한 한편 인간관계와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며 그가 고독과 사회를 오갔다고 표현한다. 군중 속에 매몰돼 내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질 때 오두막으로 돌아와 혼자 시간을 보내며 자발적 고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소로 보다 반세기 앞서 움막생활을 실천한 이가 한반도에도 있었다.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는 궐내에 3㎡ 크기의 움막을 짓고 마음을 모으는 움집이란 뜻의 ‘회심와(會心窩)’라 이름 붙인 뒤 틈날 때마다 들러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침 눈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모든 행적이 기록의 대상이 되며 끝없는 공무를 처리해야 했던 조선 왕의 살인적인 일과에 비춰볼 때 이 ‘회심와’야 말로 정조가 살기 위해 선택한 자발적 고독이었다. ‘홍재전서’에서 정조는 작고 소박한 이 움집에서 마음과 도를 모으고 스스로 경계하니 마음이 맑아진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전장과도 같은 정사의 여정 중에 그 온전한 공간 안에서의 고독이 동력이 됐음을 의미한다.


지나치리만치 준엄한 사회적 통념이 한 개인의 고독을 이상 증상으로 몰아붙이는 동안 현대인은 고독을, 고독의 방법을 잊어버렸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고독을 두고 “우리가 자유롭게 갖거나 버릴 수 있는 무엇이 아니고 우리 자체가 고독”이라 단언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물리적으론 거리를 두되 심정적으로는 타인을 이해하려 보다 그들을 가까이 하며, 새로운 창작의 영감을 채굴해낼 수단으로써 고독은 일탈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하나의 기회이자 자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간 우리가 잊고 외면해 온 고독이다.


<자발적 고독/올리비에 르모 저/서희정 역/돌베개/1만3500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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