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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남자, 커피 볶는 강사 되다'…서울시 찾동 시행 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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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후암동의 '문화카페 길'에서 김재범(가명)씨가 주민에게 커피 강의를 하고 있다. 김씨는 여느 바리스타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제공=서울시

지난 5일 서울 후암동의 '문화카페 길'에서 김재범(가명)씨가 주민에게 커피 강의를 하고 있다. 김씨는 여느 바리스타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진제공=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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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내 삶이 그렇게 추락할지 몰랐습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처지가 됐고, 살고 싶지도 않았죠. 담뱃값이라도 벌겠다는 심정으로 나왔는데 이젠 삶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서울 용산구 후암로의 허름한 건물 2층. 서울역 인근에 자리한 이곳에는 '문화카페 길'이 둥지를 틀고 있다. 겉모습은 여느 카페와 다름없지만 구성원들의 삶은 남다르다. 겨울 한파에도 차디찬 바닥에 몸을 의지하거나, 쪽방을 오가며 노숙하던 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체크무늬 남방을 차려 입고 손님이 들어오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김재범(46ㆍ가명)씨는 이곳에서 자활ㆍ일자리 과정을 밟는 다른 9명의 노숙인과 함께 새 삶의 희망을 가꾸고 있다. 카페에서 커피를 나르는 것부터 시작해 전문 바리스타 교육을 이수하며 정식 카페 취업을 꿈꾸고 있다.


김씨는 2017년 8월 이곳을 처음 찾았다. 2016년 운영하던 전자부품 도매상이 망하자 남은 돈을 털어 거래처 직원에게 물품 대금을 지급하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노숙 첫날을 떠올리던 김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몇백 군데를 돌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실패했다. 김씨는 아무 생각 없이 청계천을 걷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스무 끼를 내리 굶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마음을 고쳐먹은 김씨는 새 삶을 선택했다.


마침 후암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특화사업으로 진행하던 '후암문화강좌'가 문화카페 길과 연계해 홈바리스타 강좌를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한성공회재단의 문화카페 길은 낮에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는 카페를 운영하고, 밤에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꾸려 사업을 궤도에 올린 상태다.

후암동주민센터의 문인자 주무관은 "이곳을 찾는 분들은 사업 실패와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이 해체돼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 어린 나이에 혼자가 돼 거리로 나오게 된 사람 등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며 "그러나 살아갈 의지를 찾는 바람만은 한결같다"고 말했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김씨는 주민을 상대로 커피 이론 강의와 체험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보조강사로 머뭇거리며 일하던 그를 주민들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섰다. 이때부터 마음의 문이 열렸다. 문화카페 길의 김순자 매니저는 "김씨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파티 계획을 세우고, 강좌 개강식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등 어엿한 사업 파트너이자 전문강사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김씨의 목표도 뚜렷하다. 그는 "내년 5월이면 이곳 과정을 마치고 독립해야 한다"며 "능력을 키워 커피매장의 점장이나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 주무관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정성을 갖고 대하니 한 사람의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자극제가 되고 있다"며 "자립 의지가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카페 교육을 거쳐 마을 활동을 지원하고 마지막으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고 전했다. 김씨의 사연은 최근 서울시의 '2019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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