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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공화국 립스틱과 스타벅스

최종수정 2019.07.02 12:00 기사입력 2019.07.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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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공화국 립스틱과 스타벅스

대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 기획하고 움직이고 홍보하는 도술 같은 활약은 참으로 놀라웠다. 할리우드의 나라 미국이라 그런가. 현존하는 지상 최고 PD나 그 어떤 영향력이 막강한 유튜버라도 6월30일 판문점을 종횡 무진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선 무릎 꿇을 판이었다.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 유명인을 지칭하는 표현을 빌린다면 그야말로 최고 정치 콘텐츠 인플루언서라고 인정해드려야겠다.


이젠 인플루언서가 건넨 그 막대한 영향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국민의 길, 그냥 평범한 민초 노릇에 눈뜰 때다. 북ㆍ미 실무협상에 속도가 붙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 백악관으로 갈 수도 있다는 뉴스 더미 속에서 장삼이사 국민은 무엇을 하고 있으면 되나? 문재인 대통령이 오울렛 초소에 올라 가리켰다는 개성공단이 부활한다면 또 그때부터 국민 갑남을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


민주화와 글로벌화, 정보화가 발달할 대로 발달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길, 민초의 업은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그저 잘 따르고 순응하며 하자는 대로 동조하면 되는 일인가?


엉뚱하지만 역사적인 판문점 남ㆍ북ㆍ미 정상 상봉 화제를 이렇게 바꿔본다. '공화국 립스틱'이 들어오고 스타벅스가 들어가는 그때 비로소 통일로 가는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공화국 립스틱은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북한 화장품 하면 은하수 브랜드가 내놓은 살결물(화장수), 분크림(파운데이션)이 그래도 여러 번 매체를 탔다. 북한 조선중앙TV는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생산하는 은하수 브랜드 제품 물크림이 샤넬을 화장대에서 치워버릴 정도로 우수하다며 홍보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조선신보가 샤넬과 은하수 화장품의 성분을 대조하는 '성분분석표'까지 동원해가며 잠자는 샤넬의 코털을 건드리기도 했다.


최근 북한이 밀고 있는 주력 제품은 립스틱이라고 한다. 본래 이름은 '입술연지'인데 애칭인지 굳이 공화국 립스틱이라 부른다. 천연 재료가 주성분이기 때문에 범람하는 화학 가공품 따위보다 인체에 더 적합하고 색감이 더 곱다는 게 북한 측의 마케팅 포인트다. 북한 매체들은 "올해(2019년) 3ㆍ8 국제 부녀절(세계 여성의 날)에만도 우리의 화장품 판매량이 수입 상품 판매량보다 훨씬 많았다"고 평양 제1백화점 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가 공화국 립스틱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옥류관 냉면이나 들쭉술, 용성 맥주와 같이 일회성 행사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북한 브랜드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화장품과 같은 정규 소비재시장에서 북한 브랜드가 차지하는 존재감은 너무 없고 오로지 내수 선전용이라는 게 우리가 처한 생활 체감 통일의 현실이다.


그러니까 공화국 립스틱이 내려오고 스타벅스가 올라가는 이른바 생활 체험과 실물 경제 소비 이용이라야 진짜 역사 변화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은 비무장지대(DMZ)에서 악수하고 녹슨 철문을 여는 데까지일 수밖에 없다. 그다음 긴장이 완화되고 교류와 교역이 된다는 것은 북한 재화와 서비스 품목을 남북한 민초가 자율로 생활 속에서 가지고 사용하며 전파할 때라야 결판난다는 얘기다.


스타벅스의 경우 이미 거대한 시스템과 생태계 규모의 경제로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도시마다 자리 잡았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 연관 업체들이 합동으로 꾸리는 평양 스타벅스 1호점이 가시화될 수준까지 진척이 된다면 사람들도 오랫동안 굳어버린 마음을 열 수 있을 터다.


스타벅스가 월북하려면 첫째로 물류가 통째로 연결돼야 한다. 커피도, 아침 샌드위치 메뉴도 세계 표준에 맞게 하이 패스로 가야만 한다. 둘째로 숙련된 남한 인력과 전수받을 북한 신규 인력이 함께 잘 어울려야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몸소 단련된 실전 경영학 시스템을 공유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하이브리드라는 놀라운 실험이 펼쳐질 수 있다. 더불어 사이렌 오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모바일 페이를 지원하는 ICT 인프라와 재즈 음악 선곡이 상징하는 서구 문화 자본도 다 함께 선보이게 된다.


그러니 고립된 개성공단이나 제한된 금강산 관광을 뛰어넘는 일상 소비재 유통과 라이프스타일 기반 서비스 문화의 수용과 합작이 어서 필요하다. 서울 사람 누구라도 동네 가게에서 공화국 립스틱을 구입하고, 평양 시민들이 스타벅스를 찾아 커피는 물론 이천 쌀 라떼며 북한 강녕 전통차를 주문해보기 전까지는 죄다 공염불일 수 있다. 정치는 이벤트일 수 있어도 경제는 지속하며 살아 있는 생활 현장이니까.


이번 판문점 새 역사가 마침내 잘 된 평화로 인도해 남북한 민초가 동시에 통감할 수 있는 진짜배기 생활 통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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