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혈액형의 혈액을 수혈받으면 적혈구(사진 왼쪽) 내의 응집원이 적혈구를 서로 뭉치게 해(사진 오른쪽) 혈관을 막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아시아경제 이진경 디자이너]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핼액형은 'O형'이 유일합니다. A형이나 B형, AB형은 같은 혈액형인 사람에게만 수혈할 수 있지요. 문제는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O형이 적어 의료 일선에서는 항상 혈액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데 있습니다.
전체 혈액형 가운데 O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O형이라도 수혈할 수 없는 O형도 있습니다. 생명이 분초를 다투는 의료 일선에서는 적합한 혈액이 없을 경우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상황이 이어지게 됩니다.
수혈이 긴급한 환자 등이 자신과 맞지 않는 혈액형의 혈액을 수혈 받으면 기존에 있던 피와 수혈 중인 피가 엉겨붙어 굳어버립니다. 혈액형에 맞춰 수혈해야 하는 이유는 적혈구 속에 내에 들어 있는 '응집원(agglutinogen)' 때문입니다. 항원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응집원이 다른 혈액과 결합하면 적혈구 덩어리를 만들어 모세혈관을 막는 부작용을 유발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적혈구 속의 응집원이 서로 뭉치면서 적혈구가 덩어리로 변하면서 혈관을 막는 것이지요. 피가 흐르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O형은 특이하게도 이 응집원이 없어 누구에게나 수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혈액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수혈받을 수 있는 혈액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수혈받지 못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가 '유니버셜 블러드(Universal blood)'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니버셜 블러드는 혈액형에 관계없이 누구나 수혈을 받을 수 있는 혈액입니다.
유니버셜 블러드 개발의 선두주자는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입니다. 연구팀은 지난해 장내 유인균(gut microbiome)에서 채취한 세균 효소를 이용해 적혈구 속의 응집원을 제거한 혈액인 유니버셜 블러드를 개발 중이라고 미국의 한 학회에서 발표해 화제가 됐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이외에도 유니버셜 블러드 개발에 나섰던 과학자들은 적지 않습니다. 지난 1982년 굽지 않은 커피콩에서 추출한 효소를 이용해 적혈구 내 응집원을 떼어내는데 성공했고, 2017년에는 브리스톨대 연구팀이 '적혈구 생성 줄기세포' 배양에도 성공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커피콩 추출 효소를 이용한 연구는 기술부족과 비용 문제로 끝내 실용화에 실패했고, 체내에 주입해 무한정 적혈구를 생성하는 적혈구 생성 줄기세포 연구는 안전성 논란 때문에 추가 연구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아직 개발이 완료된 상태는 아니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의 연구는 기술과 안전성, 비용 등의 측면에서 개발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의료 일선에서 유니버셜 블러드를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팀이 유니버셜 블러드가 실용화에 성공할 경우 각 혈액형별 혈액 부족으로 인한 생명의 위기상황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전보다 혈액 공급속도가 30배 정도 빨라지고, 혈액 수급을 우한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유니버셜 블러드가 하루 빨리 실용화 돼 부족한 혈액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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