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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병역특례의 흑역사, 이젠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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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새 역사를 썼다. 남자 축구사상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병역특례 논란이 뜨겁다.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표팀 선수들의 군 복무를 면제해야 한다는 청원이 여러 개 진행 중이다.


때만 되면 반복되는 논란의 중심에는 병역특례의 흑역사가 있다. 예술ㆍ체육 특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역특례제도는 1973년에 만들어졌다. 법령에서 명시하는 특례의 명분은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을 위한 엘리트 육성이다.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법령이 개정됐다. 개정은 주로 제도의 합리적 운영이 아닌, 특례의 대상을 누구로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목표가 국위선양으로 모호하다 보니 원칙과 기준이 오락가락했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축구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하자 특례 기준을 바꿔 이들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줬다.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자 여론을 의식해 이들에게도 병역 면제 혜택이 돌아가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이후 형평성의 문제가 불거지자 2008년에는 월드컵과 WBC의 병역특례를 제외했다. 현재 병역특례 대상은 체육 분야의 경우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이상자다. 예술 분야에서는 음악, 무용, 국악에서 국제대회 2위 이상, 국내대회 1위 이상의 입상자다. 이들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현직을 유지한 채 소정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병역을 마친다. 사실상 병역 면제다.

언뜻 보면 병역특례 대상이 얼마 되지 않는데 뭐 그리 문제 될 게 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볼수록 제도 자체의 모순이 심각하다. 사회적 파장도 병역제도의 근간을 흔들 만큼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병제의 핵심은 병역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있다. 병역 자원이 넘치고, 소수 엘리트 체육인을 육성해서라도 국위선양이 필요했던 46년 전의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지금은 현역을 충원할 수 없을 만큼 자원이 부족하고, 국위선양을 위한 인재는 대중음악, e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넘쳐난다. 소수의 종목과 분야로 국한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징병제 국가는 13개국이다. 예체능 요원의 병역특례를 적용하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도의 설계와 운영이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이다.


'군 면제 받으려고 뛰는 한국 팀은 당해낼 수 없다'라는 외국 기자의 조롱 섞인 비평, '병역 브로커'로 희화화되는 감독의 모습 등은 제도의 모순이 초래하는 부작용이다.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다. 일례로 무용의 경우, 인정되는 국제대회는 열두 개다. 아홉 개는 해외에서, 세 개는 국내에서 개최된다. 2014년 이후 병역특례자는 예순일곱 명인데 이 중 국내에서 개최되는 세 대회에서 배출된 병역특례자가 쉰네 명으로 80%를 상회한다. 소수의 국내 개최 대회가 병역특례를 거의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와 병무청, 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8월을 목표로 특례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차제에 소모적인 특례제도 논란이 종식되기를 기대한다. 폐지하는 것도 대안이다. 굳이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특례자의 수월성과 대표성, 병역의 형평성이 기준이 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특례의 대상과 기준을 시대에 맞도록 정비해야 한다. 예체능 전문가 외에 중립적인 전문가를 포함한 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특례자에게는 일정 기간 병역을 유예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고, 은퇴 후에는 현역 복무와 상응하는 정도로 사회에 필요한 공익적 활동을 보람 있게 할 수 있도록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요컨대 '특례'가 '특혜'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병욱 상명대학교 교수ㆍ안보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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