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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바니 요거트'는 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일까

최종수정 2019.06.13 06:30 기사입력 2019.06.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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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이민자 출신 '함디 울루카야'가 맨손으로 쓴 성공신화
폐업한 공장에서 시작해 연매출 2.3조원 대기업으로
직원들에 지분 10% 배분해 '나눔경영' 실천

'초바니 요거트'는 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일까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2005년 설립된 요거트 업체 '초바니(Chobani)'는 창업자 함디 울루카야(Hamdi Ulukaya)를 포함해 고작 5명이 버려진 공장에서 시작해 지금은 미국 그릭요거트 업계 1위, 전체 요거트 업계에서는 요플레(Yoplait)를 제치고 2위를 달리고 있다.


직원만 3000여 명, 연 매출은 20억 달러(약 2조3600억원)에 달하며 기업가치는 39억 달러(약 4조6000억원)로 평가 받는다.미국 경제매체 패스트 컴퍼니, 포춘지 등이 초바니를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식품 기업', '세계를 변화시키는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혁신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초바니에 주목해야 할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는 수식어다.

폐업한 공장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다

창업자이자 현재 초바니 회장인 함디 울루카야는 터키 이민자 출신이다. 1994년 당시 22살이던 울루카야는 달랑 3000달러(약 350만원)를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땅에서 그를 괴롭힌 건 다름 아닌 ‘맛없는 미국 요거트’였다. 울루카야 집안은 양목장을 운영하면서 치즈와 요거트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직접 요거트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2005년 우연히 식품업체 크래프트 푸즈(Kraft Foods)의 요거트 공장이 폐업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소기업청에 지원금을 받아 85년 된 낡은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크래프트 푸즈에서 일했던 직원 4명과 요거트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년간의 개발 끝에 초바니는 첫 요거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요거트 시장은 이미 포화시장이었다는 점이다. 요거트의 대명사 '요플레'나 '다논(Danone)' 등이 이미 요거트 시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울루카야가 노린 건 요플레나 다논에서 판매하는 일반 요거트가 아닌 '정통 그릭(그리스식) 요거트'였다. 직접 레시피를 개발해 콜레스테롤과 설탕 함유량이 적으면서 단백질은 더 풍부한 ‘건강한 요거트’를 만들어 냈다.

'초바니 요거트'는 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일까

당시만 해도 달지 않은 요거트를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릭 요거트가 흔하지 않았다. 고급 유기농 마켓에서만 파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 반응은 달랐다. 건강한 '초바니 요거트'는 금세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창업 5년 만에 매출 10억 달러(약 1조1800만원)를 달성했다. 전체 요거트 시장에서 그릭 요거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했지만, 초바니의 등장으로 미국 요거트 판매 50%가 그릭 요거트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구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터키 쿠르드족 출신 가난한 낙농가의 아들 울루카야는 전 세계 부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자산만 18억 달러(약 2조1200억원)다. 뿐만 아니라 컨설팅회사 언스트앤영은 2013년 울루카야를 ‘올해의 세계 기업가’로 선정하며 미국의 성공한 기업가가 됐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들의 전설이 된 것이다.

'꿈의 직장'이 된 초바니

울루카야는 초바니가 대기업으로 거듭난 이후에도 미국 생활에서 겪었던 이민자 출신이라는 설움을 잊지 않았다. 울루카야는 이민자와 피난민들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초바니 임직원 3명 중 1명은 해외 출신이다. 거창한 해외 유학파 출신이 아니라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이다. 이들을 위해 영어를 교육하고, 통역사도 고용했다. 출퇴근을 돕기 위해 교통수단도 제공했다.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을 돕기 위해 유엔난민기구에 2000만 달러(약 236억원)라는 큰 돈을 선뜻 기부했고, 2015년에는 직접 그리스를 방문해 난민들을 도왔다. 빌 게이츠 부부와 워런 버핏이 설립한 자선단체 '기빙 플레저(Giving Pleasure)'에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지금까지 기빙 플레져에 재산 기부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전 세계 200여 명 뿐이다.


울루카야는 초바니 성공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공을 임직원에게 돌렸다. 그는 "회사가 이런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건 직원들 덕분이다. 직원들이 초바니와 함께 자신들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그는 초바니에서 일하고 있는 전직원에게 초바니 지분 10%를 나누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난민 직원들도 포함됐다. 초바니 기업가치(4조6000억원)를 고려할 때 4600억원 이상을 직원들에게 나눠준 셈이다. 울루카야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직원들을 챙기면서 이윤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시간에 7달러를 주면서 노동자들이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CEO 혼자 일궈내는 성공이 아니다"고 말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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