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기쁘게 하는 금속'...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
시장가치 생기기도 전에 높은 가치 받아... 전세계적 공통현상
고대부터 신전들이 챙겨오던 '환전수수료'... 예수도 비난


(사진=아시아경제DB)

(사진=아시아경제DB)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황금은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의 달러화와 같은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던,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가치저장의 수단으로 사용해온 금속입니다. 오늘날에도 국지전이 발발하거나 유가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시장에 위기감이 몰려오면 가격이 뛰는 '안전자산'으로 불리죠. 그만큼 황금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공통가치가 보장되는 유일한 귀금속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사람 뿐만 아니라 신들도 황금을 몹시 좋아했다는 점입니다. 전 세계 모든 신화를 살펴봐도, 금을 싫어하는 신은 없습니다. 이집트의 세트신이든, 예루살렘 성전의 여호와 신이든, 중국의 옥황상제든, 멕시코의 케찰코아틀이든 간에 신들은 모두 금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신전들은 하나같이 신에 바칠 예물로 금을 받아왔죠.

그러다보니 금은 옛날부터 매우 특수한 금속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연금술의 꼭대기에 위치한 존귀한 금속이고 그 나라의 지배자를 상징하기도 하고, 신의 상징이며, 절대적 부의 상징입니다. 오죽하면 '금권력'이나 '황금만능주의' 같은 말들도 만들어졌죠. 신을 기쁘게 만드는 이 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원정 이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지배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의 디오도토스 1세의 금화 모습.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은 그가 정복한 페르시아 신전들의 막대한 황금을 놓고 끝없는 내전을 벌였다.(사진=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대왕 원정 이후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지배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의 디오도토스 1세의 금화 모습.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은 그가 정복한 페르시아 신전들의 막대한 황금을 놓고 끝없는 내전을 벌였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


그런데 이 금은 왜 그렇게 큰 가치를 갖게 된 걸까요? 지금처럼 컴퓨터, 휴대전화 등 각종 전자기기에 전도체로서 금이 많이 사용되는 시기라면, 그만큼 산업에 중요한 금속이기 때문에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고대에 금은 철이나 청동처럼 실생활에 쓰이질 않았습니다. 대부분 장신구나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쓰였는데, 결국 신에게 바쳐질 귀한 보물을 만드는데 사용된 셈이죠.


황금이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도 문명이 발전하고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실크로드 교역길로 다른 문명권들끼리 교역을 할 때 쓰이기 전에는 대부분 신전에 쌓여있었습니다. 심지어 중남미의 아즈텍 제국이나 잉카제국에서는 딱히 화폐로 쓰이지도 않았고, 유럽인들의 약탈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신전에 고스란히 보물로 보관돼있었습니다. 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말이죠.


이렇게 신전에 잘 저축된 금들은 정복자들에게 '로또'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으로 페르시아를 점령하면서 전 중동의 신전이 수천년간 모아놓은 황금을 손에 넣었는데, 이게 마케도니아의 3000년치 세입에 맞먹었다고 하죠. 스페인 정복자들이 중남미에서 약탈한 황금은 한때 스페인을 '해가 지지 않는' 해양제국으로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야코프 요르단스의 '성전에서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1650) 그림 모습. 예수 생전에도 각 성지의 환전업은 크게 성업했다. 신도들은 해당 성전의 금화로 물품을 교환해야 신에게 예물을 드릴 수 있었고, 성전들은 금화 가치를 변동시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사진=살레시오회 홈페이지)

야코프 요르단스의 '성전에서 상인과 환전상을 몰아내는 그리스도'(1650) 그림 모습. 예수 생전에도 각 성지의 환전업은 크게 성업했다. 신도들은 해당 성전의 금화로 물품을 교환해야 신에게 예물을 드릴 수 있었고, 성전들은 금화 가치를 변동시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사진=살레시오회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


황금이 실질 가치가 생기기 전부터 왜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존귀한 금속으로 우대됐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잘 녹슬지 않아 수천년간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 보통 금의 가치를 설명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금은 불에도 약하고 점성도 강하며, 별로 단단하지 않은 무른 금속입니다. 단순히 녹슬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철이나 청동 합금으로도 더 튼튼하고 오래갈 금속을 만들 수 있죠. 화폐로 통용되기 전에도 사람들이 금을 사랑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AD

그렇지만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은 어쨌든 황금이었고, 전 세계 신전들은 이 황금을 이용해 오랫동안 꽤 많은 환전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신에게는 바칠 제물은 무조건 황금이어야 했기에, 미리 금을 마련치 못한 사람들은 신전 내에 위치한 환전소에서 해당 물품의 가치만큼 금화를 바꿔야했죠. 이 가치를 결정할 수 있었던 신전들은 중간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 속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아버지의 집'을 더럽혔다며 환전상들을 채찍으로 내리쳤다는 내용에도 이런 배경이 숨어있습니다. 어찌보면 정말로 금을 좋아했던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팔아 돈을 벌던 탐욕스러운 인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