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혜(왼쪽)와 온혜(가운데와 오른쪽). 구름모양으로 코가 올라간 모습을 띤 운혜와 운혜와 같은 모양이나 방한용으로 융과 담을 덧대 만든 온혜다.

운혜(왼쪽)와 온혜(가운데와 오른쪽). 구름모양으로 코가 올라간 모습을 띤 운혜와 운혜와 같은 모양이나 방한용으로 융과 담을 덧대 만든 온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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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비단에 예쁜 꽃잎을 수놓은 '수혜', 구름 문양으로 앞 코가 장식된 '운혜', 외피가 융(絨)으로 만들어져 발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온혜', 비오거나 눈 올 때는 방수가 되는 '유혜', 사슴가죽으로 무늬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진 '녹비혜'….


'혜(鞋)'는 목이 없는 신발을 지칭하는 옛 말이다.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빛깔 고운 옛 신발들이 전시 진열장에 정답게 놓여 있다. 여기에 조선시대 왕과 왕비가 신었던 끈이 달린 적석과 청석도 나란히 짝을 맞췄다. 목이 있는 옛 신발도 있다. 바로 '화(靴)'다. 왕과 관료가 관복에 갖춰 신던 목이 긴 '목화'다. '화혜(靴鞋)'는 왕가나 양반층이 주로 신었던 전통 가죽신이다.

소박하면서도 고상한 품위가 느껴지는 화혜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잘 녹아 있다. 궂은 날 비가 스며드는 걸 막기 위해 들기름을 바르고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 징을 박은 유혜가 대표적인 예다. 거기다 디자인은 현재 신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됐다.


(왼쪽 맨 윗줄부터)백화, 목화, 남아용 태사혜, 여아용 운혜. (오른쪽 윗줄부터)청석과 적석.

(왼쪽 맨 윗줄부터)백화, 목화, 남아용 태사혜, 여아용 운혜. (오른쪽 윗줄부터)청석과 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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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전통 '접기 기법'을 활용한 가방들.

옛날 전통 '접기 기법'을 활용한 가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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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혜를 45년째 묵묵하게 이어가고 있는 장인이 있다. 아들과 함께 4대째 전통신을 만들고 있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17호 화혜장(靴鞋匠) 안해표 장인이다. 화혜장은 조선시대 신목이 있는 신발인 화(靴)를 제작하는 ‘화장(靴匠)’과 신목이 없는 신발인 혜(鞋)를 제작하는 ‘혜장(鞋匠)’을 통칭한 것이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따르면, 중앙관청에 소속된 화장은 16명, 혜장은 14명이었다고 한다. 안해표 장인의 기억에는 아버지 시절만 해도 기생들이 혜를 사가는 등 수요가 꽤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같은 전통신을 만드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다.

안해표 장인의 화혜 작품이 최근에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다. 또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공호 교수 연구팀은 이번 전시와 연계해 전승과 연구가 미흡한 전통신의 학술연구성과를 담아 책으로 출간했다. 최 교수는 "신이 없으면 한 발짝도 뗄 수 없음은 예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 그만큼 귀하고 예민한 물건이다"라며 "그동안 신발은 복식사의 곁가지로 언급된 것이 고작이었고 몇 편의 선행 논문이 있지만 통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지난 일년 간 대학원생들과 문헌을 찾아내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30점을 재현하기 위해 안해표 선생이 나섰기 때문에 이 같은 연구 성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통을 신다. 전통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전시회에는 안해표 장인의 화혜와 함께 젊은 공예가 조하나의 가방도 만나볼 수 있다. 이 가방들은 그냥 가방이 아니다. '전통 접기 기법'이 응용된 가방이면서 가볍고 실용적이고 모던하다. 접기 기법은 실첩, 빗접, 쌈지, 병풍, 부채, 식지보 등 종이나 천을 접어 생활용품으로 써 온 조상들의 규방공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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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비영리재단 예올이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이란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 이 프로젝트는 전통에 머물러 잊혀져 가는 장인의 기술과 정신이 담겨진 공예품을 현대인의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공예장인을 후원하는 사업이다.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에 패션 브랜드 나윈웨스트와 스티브매든이 참여해 전시를 열고 있다. 나인웨스트와 스티브 매든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지알아이 코리아(GRI KOREA) 다이아나 강 대표는 "장인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우리 생활 속에 접목시켜 현대인들이 전통과 좀 더 가까워지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알아이 코리아는 10여 개 해외 슈즈 브랜드의 아시아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홍콩의 지알아이(GRI) 그룹이 지난해 한국에 100%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가회동 예올 한옥. 02-735-5878.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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