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하면서 경험이나 자본이 부족한지 스스로 되물은 적이 있어요. 결론은 사람의 역량은 다 비슷하다는 거예요. 누적이 결과를 만들어요."
여행 업계에 전례없이 가혹했던 2년여간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견뎌낸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 그는 "매일이 위기"라고 말했다. 2022년부터 스타트업 투자업계가 냉각되기 시작했고, 그 1년 전에는 코로나19라는 쓰나미가 몰아쳤다. 크리에이트립은 2021년 말 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오미크론이 한창일 때 투자유치 작업이 길어졌고, 그때 생긴 새치가 그간의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임 대표는 1990년생으로 스물 여섯 살에 창업을 했고 올해로 8년 차다.
크리에이트립은 한류와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소개한다. 관광명소 대신 헤어샵, 병원, 액티비티, 콘서트 등을 예약할 수 있게 중개해준다. 여행산업이 위축되면서 크리에이트립은 역직구 커머스를 확장해 매출을 키웠다. 임 대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코로나19 직전에 34억원의 투자를 받아서 3년 안에 잘 쪼개서 쓴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죠. 구조적인 변화는 받아들였죠. 막막해할 시간도 없었거든요. 버티는 걸 택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임 대표는 상황을 대하는 관점을 바꾸며 ‘긴 흐름’에 집중했다. 코로나19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도 ‘견뎌야 할 일’로 여겼다. 그는 "통계로 보면 기업도 궤적이 있다. 10년 이상의 단위로 본다면 한 번씩 파고가 들이닥친다"고 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12월, 34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직원 이탈은 없었다. 임 대표는 "당장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2년을 보냈는데 여행 규제가 풀린다는 뉴스를 보면서 해외 마케터들과 회의하다가 눈물이 쏟아져서, 힘들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고 회상했다.
임 대표는 스스로 ‘갈리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새벽 5시에 기상하고 자정에 퇴근하는 스케줄을 3년 넘게 반복했을 정도다. 임 대표는 존슨앤존슨에서 1년을 채우지 않고 퇴사해 창업에 도전했다. 채용 제안을 할 지인도, 조언을 구할 선배 창업자도 없었다. ‘경험 부족’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도 마음가짐은 달랐다. 그는 "스카이나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어서, 나의 경험이나 자본이 부족한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결과가 나쁘면 아직 누적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노력의 누적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임 대표는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방법을 터득했다. 임 대표는 "열심히 하는 게 항상 당연했고 일에 나를 맞추며 살았죠.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해낼 수 있는 범위에서 잘하는 분야를 극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임 대표는 ‘외국어’에 강하다. 외고를 졸업해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했고 외국인 친구가 많다. 크리에이트립을 창업하게 된 계기도 외국인 친구들의 한국 여행 리뷰 덕분이었다. 임 대표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해왔다"며 "외국인들이 드라마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남이섬, 경복궁 같은 곳들만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외국인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서 트렌드를 캐치했고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콘텐츠로 풀어내면서 크리에이트립은 월 120만명 넘는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중화권 40%, 북미 등 영어권 25%, 일본 20% 순으로 다양하다.
크리에이트립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종합 플랫폼을 표방한다. 광고를 싣지 않고 콘텐츠로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국가별 광고 대신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관심 있게 지켜볼 ‘콘텐츠’로 이용자들을 모았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그들도 궁금해한다. 임 대표는 "국적이 달라도 한류에 대한 인식이나, 좋아하는 지점이 비슷하다. 한국 사람처럼 트렌디한 한복을 빌릴 수 있는 가게 같은 콘텐츠가 잘 먹혔다"고 말했다.
‘한국적인 것이 통하는 이유’를 묻자 임 대표는 "적당히 트렌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크롭티보다는 오버핏 맨투맨처럼 한국인들이 평범하게 즐기는 콘텐츠나 상품들이 외국인에게도 잘 팔린다는 것이다. 임 대표는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적 평균보다 살짝 위에 있어요. 한국은 작고 경쟁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서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인다"며 "한국에서 빠르게 흡수한 것이 전 세계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임 대표는 올해 목표를 여행 서비스 1위로 잡았다. 환전, 보험, 선불카드 등 여행 관련 금융 서비스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5년 후에는 ‘한국 여행객들의 네이버’가 되는 것이 목표다. 10년 후에는 크리에이트립이 ‘영감을 주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빌게이츠가 그러더라고요. 2년 내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면서 10년 안에 뭘 할지는 과소평가를 한다고요. 10년 후엔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임혜민 대표는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는 1990년생으로 전남외국어고등학교와 서울시립대를 졸업했고 카이스트 경영대학 MBA를 마쳤다. 임 대표는 존슨앤존슨을 거쳐 2016년 1월 크리에이트립을 창업했다. 한국을 즐기고 싶은 글로벌 이용자를 타겟으로 하는 콘텐츠, 커머스 서비스를 통해 120만명의 월 이용자를 확보했고 누적 151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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